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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선(尹命先) 여사(女史)는 1955년 22세 때에 가난한 농부 최(崔)씨와 결혼하여 3남 1녀를 두었는데 모두 성혼(成婚)해서 분가하고 출가(出嫁)했으며 현재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장남(長男)과 함께 화목하게 살고 있다.
윤여사(尹女史)는 가난하지마는 남편의 농사일을 도우면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 왔는데 10년 전에 남편이 위암(胃癌)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윤여사(尹女史)는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좋다는 약을 구해다가 달여 드리고 침구(鍼灸) 등 온갖 방법(方法)으로 불철주야(不撤晝夜) 눈물겨운 병수발을 들었으나 4년 간의 투병(鬪病) 끝에 마침내 사망하고 말았다.
이러한 윤여사(尹女史)의 간병(看病)을 지켜 본 주민들로부터 열녀(烈女)가 났다고 칭송(稱頌)이 자자했다.
윤여사(尹女史)는 남편이 사망하자 눈앞이 캄캄하였으나 자신의 애통(哀痛)함보다도 아들을 앞세워 보내고 통곡(痛哭)하는 시어머니의 슬픔과 건강(健康)을 생각해서 시어머니를 위로(慰勞)하기 위해서 모든 슬픔을 참고 시어머니를 극진히 봉양(奉養)하였다.
그러던 중, 8년 전에 시어머니께 지병(持病)인 고혈압(高血壓)이 악화되어 거동할 수 없게 되었다.
윤여사(尹女史)는 유명한 한의원을 찾아가서 좋다는 약을 구해오고 민간요법(民間療法)으로 좋다는 약을 구하기 위해서 산과 들을 헤매어 약초(藥草)를 구해다가 달여 드리고, 식사의 시중과 대소변 처리와 목욕을 시켜 드리고, 더럽혀진 옷을 자주 갈아 입히며, 이부자리의 세탁(洗濯) 등 온갖 정성(精誠)을 다해도 워낙 연로(91세) 하시어 회복(恢復)이 어렵다.
게다가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치매(노망)현상까지 겹쳐서 윤여사(尹女史)의 고충(苦衷)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윤여사(尹女史) 자신도 이제는 환갑이 넘은 62세인데 농사를 짓는 집이라서 축사 일을 거들기도 하고 과수원에서 일을 거들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효행(孝行)을 지켜보고 자란 아들은 효(孝)가 몸에 배어 할머니를 극진히 모시고 어머니에게도 효도(孝道)하고 있다.
윤여사(尹女史)는 또 일주일에 두 번씩 이웃에 사는 어려운 할머니에게 음료수와 다과를 대접하고 경로당 청소도 자주 해준다.
윤여사(尹女史)야말로 경로효친(敬老孝親) 사상을 실천하는 효부(孝婦)이며 행복한 가정의 든든한 기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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