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신길영(申吉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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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회(1998년 4월 22일)
열행상(烈行賞)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열부(烈婦) 신길영(申吉榮) 57세

신길영(申吉榮) 여사는 교육공무원인 신길영(申吉榮)씨와 결혼하여 슬하에 3형제를 두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10여년 전 뜻밖에도 남편이 중풍을 앓게 되어 천지가 무너지는 듯 하였다.

유명한 의료기관과 약국을 찾아 치료를 하였으나 별 효험은 없고 생계는 물론이거니와 치료비의 지출로 가계(家計)는 극도로 곤란해지게 되었다.

낮에는 김밥장사를 하고 밤에는 포장마차를 하느라 지친 몸으로 돌아와서는 남편의 시탕(侍湯)과 팔다리를 주물러 주는 등 밤늦도록 물리치료를 하고, 아이들 공부 지도와 내일의 장사 준비 등 그야말로 불철주야(不撤晝夜)로 눈물겨운 형극(荊棘)의 연속이었다.

지성이면 감천(感天)이라고 남편의 병세는 갑자기 좋아지지는 않지마는 지금은 약간의 차도가 있을 정도로 좋아지게 되었다. 

근검절약(勤儉節約)한 돈으로 좋다는 약을 천리도 마다 않고 구약시탕(舊藥侍湯)함을 목격한 인근 주민들이 보기 드문 열부(烈婦)하고 극찬을 하고 있다.

슬하의 3형제도 어머니의 정성에 감화되어 각고(刻苦)의 노력 끝에 대학을 마치고 사회의 훌륭한 역군(役軍)이 되어 봉사하고 있다 한다. 

신(申)여사는 자신의 집에 환자가 있어서 다른 집 가족의 병고만 들어도 마음 아파하여 문안가서 조속히 쾌유하기를 기원하고, 주위에 혼자 사시는 어려운 할머니 소식을 듣고는 매일같이 찾아가 미음을 쑤어 드리고, 그 동안의 모든 삶에서 스며나온 한과 슬픔을 다 털고 편안한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호스피스 역할을 다해 주위의 칭송이 자자하다. 

신(申)여사께서는 현모양처(賢母良妻)일 뿐 아니라 대명 9동 6통장직까지 맡아 이웃의 불우노인 가정이나 극빈자를 찾아가 힘 닿는 데까지 부식 등을 장만하여 위로하고 말동무가 되어 소외감을 덜어 들이고도 있다. 

자기의 가계도 어렵고 더욱이 10여년 간 남편의 중풍 수발을 하면서 그 바쁜 틈을 내어 이웃을 돕고 있다 하니 요즘같이 각박(刻薄)한 세상에 보기 드문 열부이자 독행자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