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백운순(白雲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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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회(1998년 4월 22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성주군 선남면
효부(孝婦) 백운순(白雲順) 34세

백운순(白雲順) 여인은 1988년 이병훈(李炳勳)씨와 결혼하였다.

당시 시댁에서는 남양공원 묘지를 유치하기 위해 대대로 내려오던 선산(先山)을 팔아 동리사람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어 버리자 시숙은 가산(家産)마저 탕진하고 어린 두 조카만을 남겨 두고 시숙부부는 이혼한 상태였다.

매일 술만 마시고 가사도 돌보지 않은데다 시부마저 술로 세월을 보내는 파산(破産)상태의 형편이었다.

그러나 시모님과 남편은 가정을 일으켜 세우려고 첫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근농(勤農)한 까닭에 하우스농이 잘 되었다.

이에 두 조카를 친자식 이상 교육시켜 금년에 큰 조카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한다.

매일 술 타령만 하시던 시부께서 93년부터 중풍으로 거동불능이 되자 그 바쁜 농사 중에도 정성어린 자부(子婦)의 효행으로 지금은 많은 차도(差度)가 있어 기쁘기는 하나 술은 완전히 끊지 못하고 있다 한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농촌에서는 참외 수확으로 한창 바쁠 때 건강하시던 시모님께서 너무나 심한 노동 탓인지 뇌출혈로 사경을 헤매게 되어 입원을 시켰다.

낮에는 시부 간병과 영농(營農), 밤에는 시모님의 간병으로 정신차릴 여유 없이 정성을 다한 덕분인지 2개월 후 천우신조(天佑神助)로 시모님께서는 의식을 되찾게 되었다.

몇 차례의 수술과 중환자실에서 장기간 입원으로 넉넉지 못한 살림마저 힘들게 되어 통원치료 하기로 하고 6개월이 지나 퇴원(退院)을 하여 건강회복은 못 하였으나 병세가 호전(好轉)되고 있다 하니 그 모두가 백(白) 여인의 지극한 효성의 덕이라고 모두가 찬사(讚辭)를 아끼지 않고 있다.

94년 말 남의 집 단칸방에서 생활하시던 부모님을 더 이상 그대로 둘 수 없어 시멘트 블록이지만 20평의 새집을 지어 두 조카와 부모님이 편안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해 드렸지만 정작 자신의 가족들은 남의 집에서 살고 있는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