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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래(趙錦來) 여사는 1963년 영덕군 남정면의 김철완(金哲完)씨와 결혼하였다.
그녀는 시모님을 극진히 봉양하며 슬하에 6남매를 두고 근검절약(勤儉節約)하면서 살아왔다.
효성이 있고 우애가 있는 사람으로서 도리에 벗어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은 드물다.
윗사람에게 도리에 벗어난 언행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법을 어기고 사회의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옛말에도 이야기하고 있다. 이와 같이 조(趙)여사는 매사에 도리에 벗어나지 않고 성실한 생활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나 할까 연로하시던 시부모님을 정성껏 모셔오던 중 시부님께서 중풍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그녀의 시부모님에 대한 효성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느낄 수가 있다.
시부의 병을 완치시키기 위해 좋다는 약을 구하여 시탕(侍湯)하는 한편, 식사 시중은 물론 대·소변 수발까지 하면서 싫은 내색 한 번 한 일이 없이 극진한 보살핌으로 봉양하였다.
이를 본 마을 사람 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주민들까지도 요즘 보기 드문 효행자라며 칭찬이 자자하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이번에는 마을이장까지 역임했던 남편께서 7년 전부터 거동이 불편해지자 6남매의 자식과 시부모, 남편의 가계(家計)까지 도맡아서 여자의 몸으로 책임지게 되자 날품팔이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었다.
인근 강구면 두창산업에 근로자로 취업하여 남자들도 하기 힘든 일을 가족의 생계를 위해 불평 한 마디 없이 해내고 있어 이웃주민들로부터 억척스러운 효부로 칭송이 자자하다.
세월은 흘러 장남의 3자매까지 결혼시켜서 지금은 조금 생활이 나아졌다고 한다.
조(趙)여사의 가정에 멀지 않은 장래에 다경(多慶)한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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