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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주(朴東柱) 씨는 문경시 모전동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까지 다니던 해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는 가정을 팽개치고 딴 여자를 얻어 가족들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할머니와 어린 두 동생과의 생활은 고모님들이 돌보아 주어서 중학교까지는 간신히 졸업하였다.
그러나 하루 빨리 직장을 구하여 자립하겠다는 생각으로 문경공업고등학교에 진학 3학년까지 열심히 공부하였으나 뜻밖에도 할머니께서 중풍으로 거동을 하시지 못하게 되어 학교를 중퇴하고, 할머니의 간병(看病)과 동생들의 학비마련을 위해 샷시 공장의 견습공으로 취업하고 박봉으로 할머니를 간병하였다.
아버지는 재혼 2년 후 재혼한 여자와 이혼하고 행방불명이 되었다.
95년에 주위의 권고와 중매인의 소개로 신부를 맞이하여 본인은 직장 일에 열중하고 착한 신부는 할머니 병수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박봉(薄俸)이지만 근검절약(勤儉節約)하여 두 동생도 중·고교에 진학시켜 교육의 뒷바라지를 하며 부모가 없는 어려움 속에서도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아버지를 대신하여 가장으로서 책임감 있게 잘 해가고 있다.
할머니는 노령(老齡)이시라 병세(病勢)는 호전(好轉)되지 않고 있으나 직장 사장님의 호의로 할머니의 간병을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하고 있다.
친모와 자식을 버리고 자기 일신만 평안하게 살려고 가출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이제 겨우 소년기를 벗어난 젊은 사람이 할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과 부부애에다 동생들의 학업까지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박동주(朴東柱) 씨의 모범(模範)된 삶을 주위 모든 이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한다.
박동주(朴東柱) 씨는 지금이라도 아버지가 하루 속히 가정으로 돌아오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며, 친자식조차도 하기 어려운 간병을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손자, 손부로서 성과 열을 다하고 있고, 동생들의 부양과 가족들의 생계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어려운 환경을 내색하지 않고 항상 여유있는 마음을 잃지 않고 있어 더욱 더 칭송이 자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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