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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옥(朴舜玉) 여인은 87년 김준태 씨와 결혼하였다.
남편의 직장이 대구에 있었으므로 시부모께서는 대구에 가서 신혼생활을 하기를 권하였으나 김(金)여인은 노시부모 봉양하기를 자청(自請)하여 고향인 구미시 금전동에서 어른들을 지성(至誠)으로 모시면서 주말 부부생활을 하였다.
87년 노시부모께서 며느리의 정성 어린 뒷바라지도 뒤로 한 채 별세하시니 예를 갖추어 상(喪)을 치루었다.
대구에서 단란한 부부생활을 하던 중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할까 남편께서 실직(失職)을 하게 되어 귀농(歸農)을 결심하였다.
문중의 허락으로 문중산 10,000여평을 2년간에 걸쳐 잡목을 베어 내고 개간하여 과수원을 조성, 이곳에 선진농업 기법을 도입하여 고부가가치의 생산을 이루도록 하였다.
부부가 억척같이 영농(營農)하여 연수입 5천만 이상의 수입을 올려 부농의 꿈을 펼칠 희망(希望)에 부풀어 있을 때, 96년 봄 남편이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져 병·의원을 두루 찾아 치료하였으나 병세는 악화만 되어 기동도 못할 상태가 되었다.
하루 세끼 식사를 떠 먹이고, 대·소변을 받아 내고, 세수며 빨래 등을 깨끗이 하여 환자의 기분을 살려 주는 한편, 좋다는 약이 있으면 원근(遠近)을 불문하고 구약시탕(求藥侍湯), 눈물겨운 3년여에 걸쳐 간병을 할 결과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남편은 요즘 스스로 화장실 출입을 할 수 있게까지 병세가 호전되었다.
많은 농사도 혼자의 힘으로 경작(耕作)하고 있지만 조금도 나약함을 보이지 않고 근면성실(勤勉誠實)하게 생활하고 있으며, 일가친척간에도 우애(友愛)로 대하고 있다 한다.
김(金) 여인의 행적이야말로 요즘은 세상에 보기 드문 효(孝), 열(烈)을 겸비한 모범(模範)주부(主婦)로서 모든 젊은 여성의 귀감이 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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