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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경(金玉卿) 여사는 안동김씨(安東金氏) 가문의 다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양친의 자애로운 훈육(訓育)과 부도(婦道)를 닦아 16세의 꽃다운 나이에 한 살 위인 남편과 결혼하였다.
시집을 와서 보니 부군은 병약(病弱)한 몸이었다.
초등학교 때 철봉에서 떨어져 척추를 다쳐 거동(擧動)조차 힘든 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등창으로 번져 매일 등과 옆구리에서 한 움큼의 고름을 짜내야 하는 고통의 나날이었다.
6.25전쟁 중이라 병원 치료도 어려워 좋다는 조약을 다 써 봐도 효험이 없었다. 마침, 이웃사람이 1,000가지 풀을 구해 고아서 고약을 만들어 붙이면 낫는다 하여 멀고 가까운 산과 들판을 몇 날씩이나 헤매며 풀을 뜯어 이웃의 가마솥까지 빌려 몇 차례나 다시 고아 고약을 만들어 갈아붙이기를 수없이 하였다.
그러는 한편 이른 새벽에 정화수(井華水)를 떠 놓고 부군의 쾌유(快瘉)를 빌기를 수없이 하였지만, 지극정성 병수발을 한 보람도 없이 52년 27세의 젊은 나이로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고 말았다.
26세에 청상(靑孀)이 된 김(金) 여사는 48년이라는 오래고 긴 세월을 외아들을 키우며 위로 시조부, 시부모를 봉양하고, 아래로는 7명의 시동생과 시누이를 우애로서 훌륭하게 성장시켜 사회의 유능한 인재로 활동(活動)하게 하였다.
이렇게 가족 모두가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 생활하니 김(金) 여사를 부모 이상으로 존경(尊敬)하고 있다 한다.
이렇듯 어질고 착한 김(金) 여사 가정에 호사다마라고 하늘도 무심하지, 뜻밖에 외아들이 96년 위암(胃癌)으로 사망하여 또 한 차례 비통한 시련을 겪었다.
26세에 청상이 되어 74세의 오늘까지 수절(守節)하며 온갖 역경(逆境)을 극복(克服)하고 자신을 희생(犧牲)하며 평생을 살아온 김(金) 여사 여생에 반드시 행운이 있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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