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김숙이(金淑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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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회(1999년 4월 27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봉화군 소천면
효부(孝婦) 김숙이(金淑伊) 35세

김숙이(金淑伊) 여인은 20세 때 방태석(房泰石) 씨와 결혼하였다.

당시 시가는 두루미골에서 화전(火田)을 일구어 생활하고, 농한기에는 숯을 구워 생계를 유지하는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이었다.

남편은 10남매 중 4남이었으니 형제들 모두가 객지에서 생활하는 탓에 시부모를 모시게 되었다.

이렇듯 가난 속에서도 시부께서는 술을 좋아하시어 고혈압에다 당뇨병까지 겹쳐 약은 끊이지 않았고, 화전(火田)을 일구어 겨우 호구(糊口)는 하였지만 약값을 감당할 수가 없어 남편은 지하 수백미터를 들어가서 일을 하는 광부(鑛夫)로 취업, 매일 십리 길을 왕복하며 받는 품으로 약값을 충당(充當)하였다.

부부가 근면성실(勤勉誠實)하여 화전민(火田民) 생활 12년, 광부(鑛夫) 생활 10년 만에 한골마을에 정착하여 고추와 담배농사 5천평을 지어 생활이 조금 나아질 무렵, 술을 계속 드시던 시부께서 심장병(心臟病)까지 겹쳐 입·퇴원을 계속 하였다. 지극정성으로 병수발을 하였으나 보람도 없이 98년 끝내 돌아가시니 김(金) 여인은 자신의 불효탓이라고 한탄하면서 예를 갖추어 상(喪)을 치루었다. 

시부께서 별세 후 시모마저 매일같이 술을 드시고는 며느리께 술주정을 부려 괴로운 나날을 보내었지만 단 한 번의 불평불만을 드러내지 않고 받아주니 다른 동서들보다도 김(金) 여인이 제일 좋다며 같이 계시겠다고 하니 잘 모시지도 못하였는데 고마울 따름이라고 하면서 더욱 정성껏 시봉(侍奉)하고 있다 한다.

고된 농사일에다 시모 봉양에 정성을 쏟는 부인의 효행을 본 남편이 수고한다는 말 한 마디에 고생도 눈 녹듯이 사라지고 시모의 술타령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한다.

김(金) 여인의 이와 같은 효행이 군내에 알려지게 되자 95년 5월 봉화군수로부터 효행표창장(孝行表彰狀)을 받은 바도 있는 젊은 효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