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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金貞淑) 여인은 성주군 백운리에서 1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로부터 엄한 부도(婦道)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박문수 씨와 결혼하였다.
결혼 당시 시조모와 시모가 계셨으며 시모께서는 50세의 젊은 나이였으나 가벼운 중풍을 앓고 있어 지극정성으로 간병한 탓에 하루가 다르게 차도가 있었다.
그러나 시집온 지 2년 만에 갑자기 중풍이 악화되어 대학병원, 한방병원 등의 치료(治療)와 병행하여 민간요법(民間療法)인 조약으로도 치료하였으나 효험은 없고 반신불수가 되어 자리에만 누워 있게 되었다.
시모는 50세의 젊은 나이로서 30대에 시부와 사별한 처지라 성격이 까다롭고 신경질적이어서 간병하기가 힘들었지만 대·소변 처리와 삼시 식사수발, 하루 세 번 영양제를 첨가한 약의 복용(服用),목욕과 청소 등 한 치의 소홀함이 없이 봉양하였다. 또한 바깥 출입을 못하매 이발도 손수 해 드리며 신문도 읽어 드리고 세상사 이야기도 해 드려 시모께서 소외감을 갖지 않게 전심전력을 다바쳐 간병을 하였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부군(夫君)이 세균성 감염인 원형탈모증으로 머리카락이 점점 빠지게 되더니 점점 심해져 대머리가 되어 실의(失意)에 빠져 집안 분위기는 침울하기만 하였다.
김(金) 여사는 백방으로 문의하여 한방병원을 찾아 치료한지 7년 만에 탈모 병을 완치케 한 바 있는 지혜로운 주부이기도 하다.
한편 부군(공무원)의 박봉과 자신의 부업으로 근검절약(勤儉節約)하여 자그마한 아파트도 마련하여 무척 좋아하였다고 한다.
시모께서는 1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의 정성 어린 며느리의 간병도 보람없이 98년 11월 63세의 많지 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니 김(金) 여사는 자신의 지성(至誠)이 부족하여 시모를 일찍 보내게 되었다고 한없이 울었다 한다.
김(金) 여인 가정에 멀지 않아 행복(幸福)의 꽃이 활짝 필 날이 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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