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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자(金淑子) 여사는 72년도 전처와 이혼하고 가진 재산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이 노모와 시동생, 전처의 어린 딸과 살고 있는 남국남씨와 결혼하였다.
김(金) 여사는 전처의 딸을 친자식처럼 보살피고 키우며 시모 봉양에도 성심성의를 다하였다.
첫 결혼 실패로 실의에 빠진 남편을 다독이고 형제간 우애를 다지는 데도 힘쓰게 되니 어느 정도 살림의 여유도 생겨나고 자녀도 낳아 가정이 안정되어 갔다.
하지만 행복은 잠시, 78년 여름 남편이 이웃집 담배건조장을 짓다가 폭우로 건조장이 무너지는 바람에 척추를 다쳐 유명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지성으로 간병하였으나 그런 보람도 없이 척추장애 1급의 몸이 되어 휠체어에 의지하여 생활할 수 밖에 없는 신세가 되었다.
남편의 병원비로 가산(家産)은 탕진되고 남의 집 품팔이로 생계를 이어갔다.
이와 같은 생활에도 절망(絶望)하지 않고 남편의 손과 발이 되어 뒷바라지를 하는 한편, 노시모의 잦은 병수발과 봉양에 모든 정성을 다하였다.
현재는 학교 앞에서 작은 문방구점을 운영하는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절망하는 남편의 용기를 북돋우며 또한 고령으로 인해 일어나는 시모의 온갖 투정에도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고 더욱 정성을 다하여 세심히 보살피고 있으며, 자녀교육에도 소홀하게 하지 않아 아들은 대학교육까지 시켜 사회의 인재가 되어 있고 큰딸은 출가시켰다.
문중(門中)에서 수차 효행(孝行)과 열행(烈行)에 대하여 시상(施賞)도 하려고 하였으나 당연히 할 일을 하였을 뿐이라며 거절한 바도 있다 한다.
오늘날 윤리도의가 땅에 떨어져 건강한 남편도 버리고 출가하는 여성이 많은데 긴 세월 동안 장애(障碍)남편 뒷바라지와 시모 봉양에 젊음을 바쳐온 김(金) 여사야말로 현대사회에서 보기 드문 전형적 한국여성상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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