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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금연(秋金蓮) 여사는 황금동에서 유복한 가정의 외동딸로 출생,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랐으며, 23세 되는 해에 김경호 씨와 결혼하였다.
남편은 얼마간의 농사를 지으면서 보일러 수리, 연탄배달 등을 하며 건실하게 살아가는 청년이었다.
부부가 합심하여 근검절약(勤儉節約)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슬하에는 1남 2녀를 두고 있다. 이렇게 생활하던 중 호사다마(好事多魔)라더니 1998년도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을 나간 남편은 갑작스런 경련으로 업혀 들어와 급히 병원으로 실려갔지만 당뇨병까지 합병증(合倂症)이라서 상태가 어려웠다. 그러나 치료를 하였지만 병의 차도가 없고 호전되지 않는 병세(病勢)에다 감당할 수 없는 병원비로 수 개월만에 퇴원하게 되었다.
남편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고, 식사도 손수 떠 먹이고 누워서 대·소변을 받아내야만 했다.
전국의 이름난 한의원 침술사를 찾아 다닌 것도 헤아릴 수 없었고, 나무토막 같은 팔다리를 주물러 기적(奇蹟)이 일어나기를 눈물로 기도(祈禱)한 날도 많았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추(秋) 여사의 정성 어린 간병덕에 4년째 되던 해 남편의 병세는 호전되기 시작하여 일어나 기대고 앉게 되었고 기억력도 점점 또렷해졌다.
근력회복을 위해 운동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권유로 거구(巨軀)인 남편의 팔을 어깨에 업고 땀이 비 오는 듯 힘든 운동을 걸음마부터 4년간을 하루도 쉬지 않고 시켰다.
돈이 없어 재활치료를 받지도 못하고 이웃집에서 쇠파이프 2개를 얻어와 잡고 걷는 연습도 시켰다.
남편의 병과 싸워온 10여년 간 자녀들도 착하게 키워 맏딸은 출가를 시켰고, 아들은 돈이 없어 학업을 중단하였다가 늦게나마 야간전문대학을 졸업시켰으며, 나머지 딸들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착한 젊은이로 성장시켰다 하니 추(秋) 여사야 말로 자신을 희생(犧牲)하고 남편을 위하여 살아온 열행자(烈行者)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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