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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자(金明子) 여사는 어린 나이에 가난한 농가의 5남매 중 장남인 박원준 씨와 결혼하였다.
당시 여섯 살이었던 막내 시동생을 비롯해 4명의 시동생 모두 학업(學業)에 열중할 수 있도록 온갖 궂은 일을 마다 하지 않았으며, 어려운 생활형편에도 한 번의 불평도 없이 모두 출가시켰다.
또한 평소 술을 즐기시던 시부께서 쇠죽을 끓이시다 몸에 불이 옮겨 붙어 전신에 화상(火傷)을 입어 8년간을 누워 지내셨지만 언제나 밝은 얼굴로 돌아가실 때까지 극진히 보살펴 이웃주민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되었다.
그 후 홀로 되신 시모의 뜻을 존경하여 정성(精誠)껏 봉양하여 오던 중 5년 전 시모께서 중풍으로 쓰러지자,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남다른 효성이 있어 시모를 극진히 봉양했다.
그 뿐만 아니라 농사일도 바쁜 와중에도 항상 곁에서 헌신적으로 간병(看病)하였다.
그 정성으로 조금씩 차도를 보이고 있어 자녀들뿐 아니라 지역 주민 모두에게 효의 귀감이 되고 있다.
어렵고 절박한 환경 속에서도 농사일을 마치고 나면 시모의 병수발을 정성껏 하는 한편, 자애(慈愛)와 덕(德)으로 자녀를 키웠다.
4남매 모두 어려운 생활환경에서도 건강하고 바르게 성장하여 몸소 효를 실천하는 어머니의 뜻을 본받아 이웃 어른들을 공경(恭敬)하고 불우이웃들을 돕는 데에도 적극 앞장서고 있다 한다.
부지런하고 알뜰할 뿐만 아니라 선행심(善行心)도 남달라 이웃의 장애인을 비롯한 소외계층을 돕는데 앞장서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리 노인들에게도 친부모처럼 공경(恭敬)하고 있어 지역주민 모두가 김(金) 여사의 행적(行績)을 본받아 화합하고 상부상조(相扶相助)하고 있다 한다.
김(金) 여사의 이러한 지역의 소외된 주민들을 위해 행하는 효행과 선행이야말로 이웃 주민들의 귀감이 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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