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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김씨(金海金氏) 집안에서 출생한 김외남(金外南) 여사는 어려서 부모의 귀여움을 받고 자랐으며, 영해여상을 졸업하고 창수면의 이경칠(李慶七) 씨와 결혼하였다.
시집을 와 보니 시가는 자작농토(自作農土)는 별로 없었고 3천여평의 임대 농토에 담배와 고추농사를 짓고 있었다.
시부모는 고령에다 노환(老患)으로 노동능력이 없어 갓 시집온 새댁이지만 부부가 합심하여 근농(勤農)하여야만 하였다.
그러는 한편으로 시부모를 지극정성(至極精誠) 봉양(奉養)하였다.
그러한 보람도 없이 시모께서는 96년도 운명하시고, 평소부터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시던 시부께서 병세(病勢)가 악화되어 문밖출입도 곤란한 처지였다.
중풍에 좋다는 약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천리길도 마다 않고 구약시탕(求藥侍湯)해 드리고, 세 끼 식사수발과 용변처리며, 청소, 세탁을 깨끗이 하였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도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고 약 수발과 밥 수발을 들고 나면 하루 해가 언제 저물었는지 모를 만큼 시부의 병구완에 전심전력을 다 기울였다.
요즈음 젊은 여인으로서는 보기 드문 지성어린 간병을 하였으나 하늘도 무심하시지 작년 2월 사망하였다.
김(金) 여인은 자신의 효성이 부족하여 시부님을 일찍 돌아가시게 하였다면서 한없이 슬퍼하여 예를 다하여 상(喪)을 치루었음을 본 동리주민 모두가 효부라고 감동(感動)하였다 한다.
남편 이경칠(李慶七) 씨는 독농에 힘쓰는 한편 애향동지회 회원으로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남편이 봉사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내조(來朝)에도 힘쓰고 있고, 마을의 길흉사(吉凶事)에도 빠짐없이 참석(參席)하여 앞장서서 일을 도우고 있으며, 슬하의 두 형제교육에도 솔선수범(率先垂範)을 보이고 있다 하니, 요즈음 세태에 보기 드문 효부이자 현모양처(賢母良妻)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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