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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옥주(孫玉珠) 여사는 대대로 농사를 천직(天職)으로 알고 살아온 밀양손씨(密陽孫氏) 집안에서 태어나 향리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사(家事)를 도우며 성장하여 1972년 춘 3월 김초봉(金草奉) 씨와 결혼하였다.
당시 장학리 시가(媤家)는 차량 한 대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하늘만 보이는 첩첩산중에 시부모와 시동생 5명, 시누이 3명의 대가족에다 산골 다락논 서 마지기, 밭 두마지기로 생활하지니 가계가 말이 아니었다.
손(孫) 여사는 처녀 때 배워온 홀치기를 시작했고, 남편은 막노동일을 닥치는 대로 하여 겨우 끼니 걱정만 해결 할 수 있었다.
부부가 합심하여 독농(篤農)에 힘쓴 까닭에 시동생 5명과 시누이 3명을 차례로 결혼시켜 분가시켰다.
이런 와중에 시부께서 중풍으로 쓰러져 힘 닿는 데까지 좋다는 약을 구해 시탕(侍湯)드리는 한편, 대·소변의 처리와 목욕, 세탁 등 그 어려운 중풍환자의 뒷바라지를 8년여의 기나긴 세월간 불평 한 마디 없이 하였으나 1980년 12월 시부께서는 운명하시었다.
손(孫) 여사는 자기가 불효하여 시부님을 일찍 돌아가시게 하였다며 예를 다하여 정중(正中)하게 상(喪)을 치루었다.
형제간의 우애도 남달리 돈독(敦篤)하여 분가한 시동생들이 맏이인 남편을 도와 주어 논 3,000평과 밭 1,000평의 중농의 가정을 꾸려가게 되었다.
손(孫)여사는 시부님께서 돌아가신 후로 홀로 계신 시모께서 외로워 하실까봐 지성으로 봉양에 힘썼으나 2000년 2월 마을에 숙원사업이던 경로당이 준공되어 대대적인 준공기념 경로연이 열리던 날 시모께서 놀다가 갑자기 중풍이 와서 백방으로 구약시탕(求藥侍湯)하였으나 백약이 무효라 2000년 12월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시었다.
손(孫) 여사는 나머지 여생(餘生)을 시부모 같은 이웃노인들을 위해 효행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한다니 그 효행이야말로 오늘 이 땅에 사는 모든 이의 표본(標本)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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