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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분숙(金粉叔) 여인은 하양읍 동서리 의성김씨(義成金氏) 효음공 후예(後裔)인 김병읍 씨의 1남 3녀중 2녀로 출생하였다.
평소 용모가 단정하고 지혜가 총명 유순하여 부모의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대구 경북여상을 졸업하고 진학을 포기한 채 효자로 명성이 높으신 부친으로부터 부녀도(婦女道)의 엄훈(嚴訓)을 교육받고 성장하였으며, 27세의 단양전씨(丹陽田氏) 경은공 23세손 전호기 씨와 결혼하였다.
당시 시댁은 시형제들이 전부 공부에만 열중하다 결혼 후 차례로 도시로 다 떠나고 노시부모만이 농토를 지키며 외로이 지내는 처지였다. 남편 또한 자가용 타고 아침이면 직장에 나가 종일 있다 저녁에 오는 처지였으나 불평 한 마디 없이 시모님과 웃음으로 화목한 나날을 지냈었다.
그러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유달리 애정(愛情) 많은 시모님께서 98년 8월 졸지에 쓰러지자 즉시 대구 가톨릭병원으로 달려가 진단한 결과 피하출혈 뇌졸중(중풍)이라는 결과가 나와 세 번에 걸쳐 대수술을 받았으나 전신이 마비되어 꼼짝도 못하여 그 해 12월 4개월 만에 퇴원하였다.
집에서 병수발을 하며 가만히 두면 육종이 날까봐 하루에도 여러차례 돌아 눕히고,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을 묽게 죽처럼 만들어 입에 떠 넣어 잡수시게 하고, 아이들과 같이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면서 세상사 돌아가는 이야기도 해 드릴 때, 알아나 들으시는지 기분 좋은 얼굴로 지으신다고 한다.
이렇듯 지극 정성스런 자부의 간병도 헛되어 1999년 음력 9월 26일 시모께서는 자부의 손을 꼭 잡고 어려운 말씨로 힘들게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말씀 한마디 남기시고 77세를 일기로 이 세상을 하직하시었다.
고례(古禮)에 따라 다산면 숭고리 선영(先塋)하에 안장하고 일요일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성묘(省墓)를 가며, 홀로 계신 시부님이 외로워 하실까봐 시모 살아 생전보다 더 지성으로 시봉(侍奉)하고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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