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박치기(朴治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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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2001년 4월 26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영양군 입암면
효부(孝婦) 박치기(朴治基) 66세

박치기(朴治基) 여사(실제71세)는 19세에 영양군 입암면에 사는 신문환 씨와 결혼하였다.

첫아들을 낳고 가난하지만 농사를 천직(天職)으로 알고 알뜰히 생활하던 중 6.25 전쟁이 터져 남편은 국가의 부름을 받고 참전하였으나 전사(戰死)통지만 받고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시부모와 같이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하였으나 9명의 많은 식구가 생활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워 집안농사는 물론 남의 집 품을 팔아 생활하면서 밤잠 한번 실컷 자보지 못하였다 한다.

이런 처지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시동생과 시누이들을 교육시켜 모두 결혼 후 분가, 사회의 유능한 사람으로 활동케 뒷받침하였다.

74년도에는 시부께서 와병(臥病)하시자 지극정성으로 병수발 한 보람도 없이 돌아가시었다.

자신의 불효로 시부님을 일찍 돌아가시게 하였다고 자책(自責)하면서도 시모(92세)의 건강유지에 힘써 호의호식(好衣好食)도 물론 좋지만은 시모님의 마음을 편안(便安)하게 해 드리는게 으뜸이라 생각하였다.

시모께서 평소 좋아하시는 음식을 장만하여 드시게 하고, 생활이 어려워도 고기반찬을 떨어지지 않게 세심한 정성을 기울이고, 외로워 하실까봐 현재 같은 방에 기거하며 간병에 힘쓰고 있다 한다.

박(朴) 여사는 자기자신도 71세의 고령으로 6년 전부터는 퇴행성관절염으로 치료를 받고 있으면서도 시모님 봉양에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항상 웃는 얼굴로 효행을 다하고 있음을 알고, 1999년에는 영양군수로부터 효행상을 수상한 바도 있다 한다.

박(朴) 여사야말로 남편이 6·25에 참전한 미망인(未亡人)이 되어 50여년간을 청상(靑孀)의 몸으로 지내며 노시모(92세)에 효도를 다하고 있다니 출천지효부(出天之孝婦)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