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본문

임영숙(林榮淑) 여사는 청송군 부동면 이전에 사는 안동임씨(安東林氏) 가문의 8남매 중 셋째로 출생하였다.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나 1976년 11월 21세 때 박재환 씨와 결혼하였다.
시집을 와서 보니 남편은 직장도 없고 시부와 함께 고물수집상을 하면서 어렵게 살고 있었다.
젊고 건강한 몸을 밑천 삼아 임(林)여사는 남편과 더불어 재활용품을 모아 팔고 우유배달도 하며 근검절약(勤儉節約)한 생활을 한 까닭에 저축도 하게 되어 91년도 주택융자를 받아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부속건물도 건축하여 구멍가게를 운영, 지금의 진영슈퍼로 간판을 걸고 화목하게 살던 중 시부께서 중풍과 합병증으로 출입조차 못하시게 되었다.
병원과 한약은 물론 좋다는 조약(造藥)을 구해 지성으로 병구완을 하였으나 간병의 보람도 없이 3년만인 95년 12월 운명(殞命)하시고 말았다.
눈 앞이 캄캄하였으나 시모와 남편을 위로하고 자식을 키우며 저축도 하게 되니 생활이 다시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배가 심하게 아파 병원진찰결과 간암(肝癌) 말기라는 판정을 받았다.
남편을 살려야 된다는 심정으로 시누이와 같이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 입원하여 진단을 받아보니 진달 결과도 똑같은 병명이고 전문의가 수술을 해도 6~7개월밖에 살 수 없다고 하였지만, 한가닥 희망을 걸고 수술을 하고 치료하였으나 98년 7월 세상을 뜨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을 느꼈지만 노시모와 자식들을 위해 슬퍼만 할 수 없었다.
몸이 불편하신 시모가 당뇨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눈이 실명되어 출입도 못하고 방안에만 계시어 시모의 손발이 되어 식사와 용변의 처리, 목욕, 빨래, 그 뒷바라지에 지극정성을 다하고 있으나, 원채 고령이라 별 차도가 없어 임(林) 여사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임(林) 여사야말로 시부모에게 자기 평생을 바친 효부요, 남편에게 열부(烈婦)니, 우리 한국전통(韓國傳統)의 여성상(女性像)이라 하겠다.
- 이전글제44회 효행상(孝行賞) 조점선(趙占仙) 25.07.01
- 다음글제44회 효행상(孝行賞) 박치기(朴治基) 25.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