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이부자(李富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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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2001년 4월 26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안동시 일직면
효부(孝婦) 이부자(李富子) 58세

이부자(李富子) 여사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온갖 설움으로 생활하여 오던 중 20세의 꽃다운 나이에 안동시 일직면 구미 1리에 가난한 농부 권영주(勸寧周) 씨와 결혼하였다.

시집을 와서 보니 시집은 두메산골에서 시부모와 시동생, 시누이 등 9명의 대가족이 산비탈에 있는 논, 밭 1,200평으로 호구(糊口)하기조차 어려운 현실이었다.

부부가 합심하여 근농(勤農)하고 남의 집 품팔이도 하며 생활하던 중, 결혼 7개월 만에 남편은 군에 입대하게 되어 실질적인 가장으로서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도 시부모를 지극정성 봉양하였다.

그렇게 생활하던 중 시부께서 7년 전 노환으로 돌아가시고 시모는 고령(83세)에다 위염, 관절염, 신경통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워 한약과 조약(造藥)으로 정성껏 수발하였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너무나 힘이 들어 강원도로 이주하여 양조장에 직장을 구해 부부가 근검절약(勤儉節約)하여 시부모에게 하얀 쌀밥은 못 해 드려도 보리밥이라도 마음껏 드실 수 있도록 생활비를 보내 드리며 생활하였으나, 시모의 건강 악화로 귀향하여 다시 손이 부르트도록 열심히 농사지어 시누이, 시동생을 모두 출가시키고, 특히 시동생은 대학까지 졸업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여 남편을 감동시켰고, 항상 구박과 간섭만 하던 시모로부터 칭찬을 들었다니 이 또한 효행이 아니겠는가.

뿐만 아니라 지난 날의 온갖 고생으로 손마디가 뒤틀리고 퇴행성 관절염으로 통증이 심하나,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힘 닿는데까지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돕고 있다 한다.

슬하의 자녀들도 어머니의 효행과 선행을 보고 훌륭히 성장하여 모두 대학을 졸업하여 각 방면에서 훌륭한 인재로서 활약하고 있다 하니 이(李) 여사야말로 효부요 현모(賢母)이자 선행자(善行者)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전형적 한국여성상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