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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랑 여사는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에 세거하는 명문 안동김씨의 후예 김신성 씨의 1남 3녀 중 3녀로 출생하였다. 어려서 부모로부터 유가의 엄훈을 교육받고 성장, 18세에 같은 면 압동리에 의성김씨 후예 김용특씨의 외동아들 김두호 씨와 결혼하였다.
시가는 빈농에다 시모님은 청각 및 언어장애인이었으나 조금도 실망하지 않고 시부모 봉양에 성을 다하는 한편 부부가 합심, 근농하면서 생활하던 중 1967년 초 시부께서 건강이 나빠 큰 병원에서 진찰받아 본 결과 식도암이란 난치병이었다.
김 여사 부부는 병·의원, 한의원 등의 치료는 물론 사방에 수소문하여 좋다는 조약을 만들어 드시게 하고, 더우기 목병이라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어 손수 음식을 갈아서 만들어 직접 입에 떠 넣어 드리고, 시부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기 위해 세수며 빨래, 청소 등을 깨끗이 하여 청결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한편, 집안의 대·소사도 꼭 아뢰고, 세상사 돌아가는 이야기 등을 하면서 시부님의 소외감을 달래 드리기도 하며 지극정성으로 간병을 하였으나, 며느리의 효도 헛되어 와병한지 2년 6개월이 지나 영면하시었다.
김 여사는 자신의 정성이 부족하여 시부님을 일찍 돌아가시게 하였다고 자책하면서 고례에 따라 상을 정중히 치르고 삭망전과 조석상식을 빠짐 없이 올려 예를 다하였다.
더우기 남편 김두호 씨께서는 3년 탈상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성묘를 하였다니 이 광경을 본 동리주민 모두가 보기 드문 효자 부부라고 극찬을 하고 있다 한다.
그뿐 아니라 6.25 전쟁으로 부(父)가 행방불명 된 후 모(母)가 개가한 종질 1명과 6.25 전쟁으로 부 전사 후 모 개가한 종질(호적 입적됨) 1명, 또한 부모가 모두 병사한 종질 1명 등 합 3명의 종질을 친자식과 같이 키워 모두 출가시켰다.
그 뿐 아니라 시삼촌 김용석 씨를 1949년부터 68년까지 19년간을 봉양하다 68년 77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친부처럼 모셨다 하니 그 후덕한 인품은 과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하겠다.
이렇듯 시어른분께 효도하는 한편, 한 사람도 아닌 종질 3명과 시삼촌까지 4명의 친척을 가족처럼 생활하다 갈 길을 가게 하였으니 결코 평탄한 삶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천품이 유순하고 착하여 오늘날까지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형극의 길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고 있다 한다.
슬하의 4남 2녀의 교육에도 전심전력을 기울여 6남매 모두를 4년제 대학까지 졸업시켜 두 딸은 출가를 시켰고 4남은 모두 유능한 인재로서 국가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하니 이 또한 평소 어머니의 효행과 선행을 보고 성장한 무언의 교훈의 결실이라 하겠다.
이렇듯 김 여사는 52년간의 장구한 세월을 귀 멀고 말 못하는 시모를 위해 또한 식도암으로 2년 반을 투병하시다 유명을 달리 하신 시부의 간병을 위해 자아를 희생하였으니, 출천지효부이다.
홀로 되신 시숙부를 돌아가실 때(77세)까지 19년이란 긴 세월 동안 모셨고, 부모 없는 전쟁고아인 종질 3명을 양육 출가시켰으며, 그 말 못할 고충의 나날을 슬기롭게 극복한 비단결 같은 고운 마음의 소유자며 선행자이다.
또한 솔선수범하여 효와 선을 말없이 자녀에게 교육시켜 훌륭한 인재가 되게끔 하였으니 현모요, 부모에게 효행하고 일가친척에게 우애를 돈독히 하고 자녀교육 잘 시켜 가화만사성을 이루었으니 김여사야말로 효행과 선행을 겸비한 현모양처이다.
말이란 자신에게서 나가지만 일반 대중에게까지도 그 영향이 미치는 것이며, 행동은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여 번져 나가지만 곧 먼 곳까지에도 나타나게 되는 것이 원리원칙인 것과 같이 여유로운 생활로 인해 풍요로움을 향유하는 가운데 인간소외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인륜의 무시, 도덕에 대한 무관심 등이 가속화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지만 그 숭고한 행적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기본사상이 충효에 있는 것과 같이 대아의 성취를 위해 소아의 희생정신으로 귀결되며, 우리의 전통을 빛내는 미풍양속을 이룩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족의 정기로서 그 미덕이 영원히 지속되어 나가리라고 본다.
서양의 물질문명에 밀려 우리 나라 고유의 경로효친사상이 흐려져 가는 요즈음 뭇사람들의 귀감이며 모든 여성들의 사표라 아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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