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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태(金順泰) 여사는 16세의 어린 나이로 고남진(高南鎭) 씨와 결혼하였다. 결혼을 하고 보니 남편은 어릴 때 열병을 앓고 난 후부터 정신박약(精神薄弱) 증세와 몸의 일부도 장애가 있어 정상적인 생활은 하지 못하고 동리 잔칫집과 초상집을 찾아 다니며 술이나 밥을 얻어먹고 망나니 같은 짓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집안이 이렇다 보니 그녀는 어린 나이지만 농기계도 없던 시절에 이른 새벽 별을 보고 논밭에 나가 달을 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고된 일을 해 가면 살았다.
세월은 흘러 슬하에 2남 2녀를 두어 생계는 더욱 어려웠으나 자작농토(自作農土)가 적어 이웃집 밭을 임차(賃借)하여 깨, 고추, 양파 등을 심어 독농(篤農)하고, 소도 1~2마리 사서 길러 팔아 자녀들 교육비에 보태어 쓸 정도로 근면 성실하게 생활하고 있었다.
근면과 성실함과 어진 마음을 인정받아 1993년부터 7년여 동안 마을의 부녀회장직을 맡아 마을의 대·소사마다 정성을 다하여 경로효친을 실천하고 남편에 대한 열행으로 인해 칭찬이 자자하다.
그러던 중 3년 전부터 남편은 몸의 근육이 굳어지는 파킨스씨병이 발병하여 고생하다 2001년 4월부터는 방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넘어지며 혼자서는 꼼짝도 할 수 없게까지 되었다.
낮에는 농사일로 고된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는 남편의 몸을 주물러 주고, 매 끼니마다 영양가 높은 죽을 쑤어 떠 먹여 주며 정성을 다해 남편 간병(看病)에 임하고 있다.
42년이란 기나긴 세월 동안 단 한 번의 불평불만 없이 남편 뒷바라지에 정성을 다 바쳐 살아오면서 희망을 준 것은 자녀들이다. 힘들게 살아온 모친의 마음을 한 번도 거역하지 않았고, 셋째와 넷째는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대학까지 졸업하였고, 지금은 모두 결혼하여 따로 살고, 아들 2명은 번갈아가며 부모를 모시고, 아버지를 목욕탕에 모시고 가서 등을 밀어 드리고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을 사서 부모에게 드리고 있다 한다.
이를 본 인근주민 모두가 열녀(烈女) 집에 효자(孝子) 났다고 극찬(極讚)을 하고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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