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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희(金季姬) 여사는 1970년 정재열(鄭載烈) 씨와 결혼하였으며, 슬하에는 3남을 두어 올바르게 교육시켰다.
시부모에게 효를 다하며 성실하게 살고 있던 중 83년도 1월 1년간 병석에 누워 계시던 시부께서 돌아가신 후 시동생이 전답을 담보로 은행대출을 받아 사업을 시작하다가 몇 년 못 가서 부도(不渡)가 나자 전답 모두가 은행 빚으로 넘어가고 생계(生計)가 막연하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남편과 같이 날품을 팔며 생활하다 91년 남편이 환경미화원으로 취업이 되어 생활이 조금 나아지던 중 93년 시모께서 와사병으로 쓰러지자 청자요업에 취업을 하여 그곳에서 나온 돈으로 병원비와 약값 등에 보태었다.
그러나 시모의 병이 악화되어 입원을 하게 되자 간병을 위해 직장을 쉬게 되었고, 병세가 호전되어 퇴원 후 다시 직장을 다니는 생활을 10년 넘게 하고 있으면서도 단 한 번도 얼굴을 찌푸리는 일 없으며, 병원비를 마련하여 지극정성으로 시모 수발을 하고 있다.
더욱이 부도로 인해 생계가 어려워진 시동생에게 원망하지 않고 이전보다 더 정을 베풀며 형제간 우애(友愛)를 돈독히 하고 있다 한다.
또한 시모 병원비와 자녀교육비 등으로 넉넉지 않은 생활 속에서도 매년 4~5회 이상 마을 경로당을 찾아 식사대접을 할 뿐 아니라 마을의 각종 대소사에도 내 일처럼 솔선수범 돌보고 있으며, 이웃 어른들도 친부모처럼 공경하고 있다 한다.
자녀교육에도 힘써 장남은 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보내지 못했지만 훌륭하게 생활하고 있고, 둘째는 전문대를 졸업하였고, 막내는 전문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다.
평소 어머니의 효행과 선행을 보고 자라난 환경 덕으로 부모님께 효도함은 물론 이웃 어른들을 공경하고 어려운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성인으로 성장시켰다.
하니, 김(金) 여사야말로 시모에게 효부요, 이웃에게 선행자요, 자식에게는 현모이니 그 갸륵한 정성 헛되지 않아 멀지 아니하여 웃음꽃이 만발하는 집안이 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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