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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李英州) 여사는 산골마을인 고령 운수면에서 출생하여 21세 되던 해 차영환씨와 결혼하였다.
시가는 빈농인데다 남편은 직업도 없었고 시부는 술만 좋아하는 가장이었다. 남편이 결혼 4년 만에 직장을 구하게 되어 식구 모두가 대구로 이사와 사글세방 두 칸에 6식구가 살기에는 형편이 없었지만 자신도 직물공장에 다니고 사과, 어묵행상, 화장품 외판원 등을 하면서도 시부모 봉양(奉養)에 정성을 다하며 생활하였다.
그러던 중 시부께서 뜻밖에 폐결핵(肺結核)에 걸리게 되어 병원약은 물론이고 결핵에 좋다는 온갖 민간요법(民間療法)의 치료를 수 없이 계속해 드리는 한편 몸보신에 좋다는 개고기는 끊일 날이 없이 해 드리고,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간병한 결과 2년만에 기적처럼 완쾌(完快)되었다.
시모께서는 91세 때 화장실에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였지만 병원에서 의사선생 말씀이 3일을 못 넘긴다면서 장례준비를 권했다.
그러나 의사에게 애원(哀願)하여 중환자실에 입원시켜 치료는 물론이고 검은 혈변(血便)을 맨손으로 치우고 물행주로 닦아내기를 40일, 중환자실에서 일반입원실로 옮겨 10일 만에 퇴원하게 하였고, 퇴원 후 대·소변을 못 가려 의복, 이불, 벽에 오물로 얼룩지게 하였지만 그럴 때마다 빨래를 자주 하여 갈아 입히고 매일 청소도 깨끗이 하여 환자 방에 있게 마련인 냄새를 없게 하는 등 세심(細心)한 정성을 기울였다고 한다.
지난 세월 남편이 39세 때 위궤양으로 위의 3/5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하게 되었고, 그 간병을 하느라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2년 만에 완쾌되었다.
지금은 시부, 남편은 돌아가시고 98세나 되신 고령의 시모를 36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단 한 번의 불평불만 없이 봉양(奉養)하고 있음을 본 일가친척과 동리분 모두가 효부라고 극구 칭찬하고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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