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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金永俊) 씨는 경주김씨의 후예인 김숙현(金淑鉉) 씨의 3남 1녀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1971년 8살 되던 해에 부친께서는 왼쪽 대퇴부(大腿部) 골수염으로 입원하여 다섯 차례에 걸친 대수술을 받고 사망 직전에 이르렀으며, 전재산인 전답 400평과 집까지 팔아 병원비를 충당하였다.
이렇게 되자 끼니도 이을 수가 없어 거택보호자로 책정되어 매달 밀가루를 배급 받아 겨우 연명(延命)하였다.
신의 도움인지 부친의 병환(病患)이 점차 차도가 있었고, 집안생계를 위하여 어머니는 남의 일 품팔이도하였고, 또 농토를 임차하여 수확한 농작물을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면서 자녀들을 키워 오셨다.
김(金)씨는 이러한 어머니를 도우며 열심히 공부하여 상주농업전문대학을 졸업하고 9급 농업직 지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1988년 7월 고령군 지방공무원에 임용되어 열심히 근무하고 있었다.
이제 조금 살 만하니까 부친께서 2001년 4월 뇌졸중으로 다시 쓰러져 병원으로 모셔 응급치료(應急治療)를 하셨다.
정성을 다하여 간병한 까닭에 빠른 회복을 보이더니 그 해 6월 뇌졸중 재발과 패혈증으로 대구가톨릭대학병원 중환자실에 다시 입원하게 되었다. 낮에는 공무(公務)에 전념하고 밤에는 부친 간병을 하면서 새우잠을 자는 고난의 나날이었으나 부친을 회춘(回春)시키겠다는 신념으로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간병한 결과 입원 10일만에 의식을 되찾고 40일 만에 퇴원을 할 수 있었으며, 이를 본 담당의사 말씀이 아들의 효성(孝誠)이 하늘에 닿아 기적이 일어났다고 감탄을 하였다 한다.
부인 역시 박봉의 남편을 도와 시부모를 극진(極盡)히 봉양하고 있으며 밝은 내일을 위해 부업전선에 뛰어들기도 해서 주위로부터 알뜰주부라는 평을 받고 있다 한다.
김영준(金永俊)씨야말로 근세에 보기 드문 젊은 효자이며 모범공무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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