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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농가의 장남으로 용성면 미산리에서 출생한 김관수(金寬秀) 씨는 어려서부터 근면성실(勤勉誠實)하여 주위로부터 일 잘한다는 칭찬(稱讚)을 들으며 성장하였다.
결혼하여 슬하에 4남 1녀를 두었으며, 부모를 모시고 아내와 함께 논 1,500평과 밭 1,000여 평을 열심히 경작(耕作)하며 어려움이 있어도 부부가 서로 인내(忍耐)하며 오순도순 살아왔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더니 89년 6월경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던 아내가 중풍으로 쓰러져 좋다는 약과 병·의원의 치료도 받았으나 병은 깊어만 갔고 그로부터의 삶은 너무나 힘들고 벅찼다.
고령의 부친 뒷바라지, 아내 병구완, 자식들 키우기와 농사일하기에 여념(餘念)없이 살았으나 1999년 4월 사랑하는 아내는 한평생 고생만 하다 좋은 세상 재미나게 살아보지 못하고 남편 품에 안기어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고야 말았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슬픔에 잠길 수만은 없는 현실(現實)이었다. 김관수(金寬秀) 씨의 부친(95세)은 나이가 너무나 고령인데다 모친과 아내마저 없어 시봉(侍奉)하기란 너무나 힘겨운 생활을 하여야만 했다.
그러나 지극정성으로 모시기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이 만사를 부친께 아뢰고 행하며, 이제는 자식들이 성장하여 같이 살려고 하였지만 거절하고, 손수 부친의 식사 수발과 세탁, 세수 등도 시켜 드리고, 추운 겨울에는 방이 춥지나 않나 구들에 손도 넣어 보고, 그날의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 해 드리는 등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세심(細心)한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한다.
자신도 76세의 고령이라 자녀들의 봉양(奉養)을 받은 처지이지만 오로지 노부(老父)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犧牲)한 삶을 살고 있는 김 옹(翁)을 보고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효자라고 입을 모아 칭송하고 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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