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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택(李鍾宅) 씨는 1940년 2월 2일 달서구 월암동에서 명문 성주이씨의 후예로 출생하였다.
일제감정기 떄 그의 백씨(伯氏)가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후 소식이 두절되자 홀어머니와 형수를 모시기 위해 다니던 중학교 학업을 중퇴하고 소년가장(少年家長)이 되어 모친과 형수를 모시고 농사일을 하면서 생계(生計)를 이어 왔다.
세월은 흘러도 홀로 된 형수는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우울증에 걸려 고생하심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병·의원의 치료와 민간요법 등 극진한 보살핌으로 병세가 호전되어 가던 중 모친께서 고령으로 인한 건강악화로 알아 눕게 되었다.
평소부터 이종택 씨는 효(孝)는 꼭 호의호식(好衣好食)과 물질적으로 풍족해야 한다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릴 뿐 아니라, 동리 대소사며 집안의 작은 일도 일일이 모친에게 아뢰고 행함으로 어머니의 소외감을 덜어 드리고 편안하게 해 드리는 한편, 병원과 한의원 치료 등에 지극정성 간병하였으나 1982년 향년(享年) 88세로 별세하시었다.
이종택 씨는 자신의 불효로 어머니를 일찍 돌아가시게 하였다고 자책하면서 상(喪)을 정중히 치루고, 고례(古禮)에 따라 삭망전(朔望奠)과 조석상식(朝夕上食)을 정성껏 올렸다 한다.
이(李) 씨는 효행심뿐 아니라 선행심도 남달라 70년대 달성농지개량조합 월배 소장으로 근무하다 퇴직시 받은 퇴직금으로 2001년부터 매년 저소득층 자녀 5명에게 2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또한 마을에 독거노인(獨居老人)들에게는 물심양면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관계기관에 이들을 대신하여 복지시설 입소, 경로연금, 기초생활수급 가능 여부 등을 확인하여 많은 노인들이 복지행정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마을의 길흉사에는 몸을 아끼지 않고 솔선수범 어려운 일을 맡아 처리하고 있다 한다.
그 외에 선행 사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종택 씨야말로 효(孝), 선(善)을 겸비한 분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귀감(龜鑑)이 되는 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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