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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차순(裵且順) 여사는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7년 6월 의성읍 후죽리 김금섭씨의 5남매 중 막내아들인 김민재와 결혼하였다.
결혼 후 대구에서 생활하다가, 집안 사정으로 남편 고향으로 돌아왔다.
1982년부터 생활신조인 효를 근본으로 삼고, 시모(93세)를 봉양(奉養)하며 예의범절로 웃어른을 공경하여 화목한 가정을 꾸려 왔다.
평소 93세인 시모에게 효도하며 외출 시는 반드시 '출필고 반필면(出必告 反必面)'으로 공경스런 인사는 빠뜨리지 않았다.
노인들이 소외감과 고독감을 느끼지 않도록 세상사 일들이나 집안의 사소한 일에도 말씀드리고 처리하여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했다. 때로는 말벗으로 고부간에 충분한 대화로 사소한 집안 일을 지혜롭게 극복하여 이웃가정보다 더 좋은 화목한 가정을 이끌어 오며, 동네 사람들로부터 “저 집 고부간은 마치 모녀 같아”하면서 주위의 칭찬이 자자했다.
그리고 배 여사는 시모께 효도하고 이웃간 다정하게 나누는 인사성에 정성을 다하는 평소 생활 모습이 자식들에게 보여준 산교육으로 장자를 교육시켜 고향을 지키는 공무원으로 근무하게 하였으며, 막내는 대학 4년생으로 올바른 청소년으로 훌륭하게 성장하면서 예의 인사성은 주위에서 모전자전이란 말들을 자주 듣기까지 하였다.
지역사회 남성의식 개혁에도 앞장섰으며, 1933년 4월부터 2002년 12월까지 상리 1리 새마을부녀회장, 의성읍 새마을부녀회장 등을 역임하는 동안 긍정적이고 활발한 성격과 근면하고 성실한 자세로 국토대청결운동 전개에 적극 참여하였고, 자연보호운동, 자원재활용운동, 2002년 월드컵 국토공원화운동을 전개, 생계 곤란자 돕기, 사랑의 집수리 운동 등을 추진하면서 자신이 먼저 실천하여 사회의 모범적인 지도자로서 업적이 다대하여 표창을 받은 사실이 많이 있고, 현재도 주민들의 사랑 속에 칭찬이 자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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