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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李相姬) 여사는 1980년도에 혼인하여 남편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남편은 2남 4녀를 둔 가정의 맏아들로 대구에서 회사원으로 근무하였고, 시부모님은 청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켰다.
그러던 중 청도 운문댐 건설로 시댁이 수몰하게 되면서 시부모님을 대구로 모셔와 봉양하자며 이 여사가 먼저 남편에게 제의했기에 남편은 지금도 그 점에 항상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약 17년 동안 시부모님을 봉양하면서 이 여사는 타고난 이해심과 인내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시부모님은 내성적이고 다소곳하신 성품으로 별다른 내색 없는 분들이었기에 성품을 맞추기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맏며느리로서의 그녀는 항상 내 부모님이라는 생각을 하면 먼저 묻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탓인지 17년 동안 집안에 큰 소리 한 번 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3년 전 지병으로 시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시아버지는 감사와 고마움의 표시를 하시던 모습이 지금까지 생생하고 고맙다고 한다.
지금은 홀어머니를 모시는데 항상 댁에만 계시는 모습이 안타까워 어르신대학이나 경로당을 직접 찾아 등록하실 만큼 시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1998년부터 홀트 서예교실에 입문하여 지금까지 총무로 있는 이 여사는 타고난 성품과 인자함으로 다른 회원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1999년도 홀로 어르신 생신잔치에 참가하여 20여 명에게 정성스런 생신상을 차려 드렸고, 2000년도부터는 지역 저소득세대 복지기금 마련을 위한 알뜰바자회에도 노력봉사를 하였는데, 지역 저소득세대 월동비 지원, 동거 장애인부부 결혼식, 나눔의 집 신축 등 다양한 영역에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 여사는 인내심과 이해력으로 시부모를 성심성의껏 봉양하여 주위 주민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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