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김미경(金美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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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회(2008년 4월 24일)
보화상(補化賞) 본상(本賞)
대구 중구 대신동
효녀(孝女) 김미경(金美京) 41세

김미경 씨는 철공소 하청 일을 하시던 아버지와 전업주부로 살림만 하시던 어머니 사이에서 2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단란한 가정에서 화목하게 살다가 갑자기 어머니가 행방불명이 되면서 고난은 이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실의에 빠진 아버지를 대신하여 13세의 어린 나이에 낮에는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집 안 청소, 세탁, 식사 등 가족을 위해 소녀 가장으로써 생계를 꾸려 나갔다.

가난한 생활을 하였지만 아버지와 세 명의 동생을 보살피며 생활하던 중 어머니의 행방불명 후 실의에 빠진 아버지가 1992년도에 건강이 나빠 쓰러지게 되어 그나마 조금씩 하시던 일도 하지 못한 채 병약하게 되었다. 

2002년에는 치매성 중풍으로 거동 불능 상태가 되면서 그 옆에서 누군가가 돌보아 주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그나마 낮에 잠깐씩 시간제 일을 하던 봉제 일을 그만두고 거동 불능 상태인 아버지 곁에서 24시간 손과 발이 되어 대소변을 받아 내며 지극정성으로 간병을 하고 있다.

간혹 정신이 혼미하지만 정신이 돌아와 여러 가지 요구를 하시는 거동 불능의 아버지를 휠체어에 태우고 20여 분 거리에 있는 한방병원에 일주일에 세 번씩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모시고 가서 치료를 받게 하였으며, 동네에 있는 노인 전문병원의 재활 운동 기구를 이용하여 일주일에 한 번씩 재활 운동을 시켜 드리고 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병환 중의 아버지가 원하시는 부드럽고 소화가 잘되는 음식을 준비하여 규칙적인 식사로 기력을 잃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여름에는 하루 2회 이상, 겨울에는 이틀에 한 번씩 목욕을 시켜드려 누워서만 지내시는 분의 청결 관리에도 항상 만전을 기하고 있다.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오는 날이면 아버지에게 사람 구경시켜 드린다고 휠체어에 타신 아버지를 모시고 서문시장을 둘러보기도 하여 무료하고 적적한 기분을 돌려드리고 있다. 

그리고 가끔씩 가족들과 함께 한적하고 고요한 시골과 바닷가 등지로 아버지를 외출시켜 드리는 등 아버지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양하고 있다. 

여자로서 힘에 벅차지만, 아버지의 병수발과 봉양에 싫은 내색도 없이 밝은 모습으로 꿋꿋이 생활해 나가고 있어 이웃 사람들의 칭찬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미경 씨는 혼기를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13세 때부터 지금까지 어린 동생들과 병든 아버지를 극진히 봉양하는 모습은 현대사회에 있어 가족 간에 있어서도 자기 자신만의 발전과 행복만을 추구하고 이기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힌 현대인들에게는 큰 귀감이 될 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에서는 볼 수 없는 하늘이 내린 효행자로서 지역사회와 주민들에게도 큰 감명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제35회 어버이날 효행 부분 국민포장을 수상할 정도로 이미 효행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생활이 몸에 배어 남다른 성품은 검소하고 절약하는 정신으로 이어졌으며 모든 일에 충실하게 생활해 오고 있다. 그녀의 효행은 13세 때부터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세 동생의 가장 노릇을 해오면서 이웃의 어른들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어진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했다. 특히 그녀는 아무리 힘든 고난이 닥쳐와도 불평 없이 행동으로 실천을 해온 과묵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잘 살기를 바라며 더 편리하고 풍족하게 살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급진적인 정보사회로의 이행과 고도 경제성장의 지속으로 생활이 나아지게 되었지만 인간성 상실과 도의의 몰락도 또한 진전되고 있다. 이러한 세태에서 부모 공경과 효를 생활의 근본으로 실천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우리 사회를 밝게 하는 기폭제가 되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