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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연(李福蓮) 씨는 안동시 예안면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2살 되던 해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시고 5살까지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다가 오빠가 결혼을 한 후에는 오빠와 함께 살았다.
넉넉하지 못한 농촌 살림에 부모도 없이 형제들에게 의지하여 어렵게 생활하다가 1979년 2월 의성군 옥산면의 김경달 씨의 삼남 故 김수용 씨와 혼인하였다.
장남을 비롯한 시댁형제들이 타지에 거주하기에 혼인 후 시부모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두 아들을 낳아 어렵지만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았다.
그러던 중 1985년 9월 남편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34살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되었다.
친정부모가 일찍 돌아가시고 시부모를 친부모로 생각하고 모셔 왔는지라 남편이 사망하였다고 하여 이들을 떠나 홀로 생활한다는 것은 감히 생각지도 못했고 앞으로도 모셔야 하는 것이 순리에 따르는 길이라 생각하여 현재까지 서로를 의지하며 아버지, 어머니라 호칭하며 살아왔다.
자녀들 또한 어머니를 본받아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바르게 자라왔으며 장남은 직업군인으로, 차남은 IT계열 회사원으로 다들 제 자리에서 제 몫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요즘 들어 시부(김경달, 20년 1월생)가 거동도 불편하신데다 온 몸의 장기 또한 좋지 못하여 음식을 제대로 드시지 못하자 온갖 종류의 미음, 음료 등 먹기 편한 음식들을 만들어 드리고 있지만 한두 숟갈 정도 겨우 드실 뿐 제대로 드시지 못하여 항상 노심초사하며 지내고 있다.
게다가 시모(신남선, 24년 1월생)는 보청기 없이는 듣지를 못하시나 보청기를 해드려도 잃어버리거나 물에 넣기 일쑤라 제대로 의사소통도 이루어지지 못하여 고부간에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시부는 이런 모습을 보고 고부간에 불화라도 생길까봐 자신의 몸이 아픔에도 사후에 남겨질 처와 며느리를 걱정하며 그 동안 미안하고 고마웠던 마음을 자주 표현하신다고 한다.
시부모의 건강상태가 이처럼 좋지 못하여 요즘은 바깥 외출도 거의 삼가고 음식이나 잠자리를 돌봐드리며 함께 산책을 하는 등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 부모 모시기도 쉽지 않은 현 세태에, 남편도 없이 20여년이 넘도록 홀로 농사를 지으며 자녀를 키우고 시부모를 내 부모보다 더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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