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이희정(李嬉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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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회(2010년 4월 22일)
효행상(孝行賞)
경북 고령군 다산면
효부(孝婦) 이희정(李嬉貞) 39세

이희정(李嬉貞) 씨는 1995년 9월, 7남매 중 막내아들인 현재의 배우자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고 시댁에서 1년간 시부모를 모시고 살다 자영업을 하던 남편을 따라 전주로 분가하였으나, 경험이 부족했던 남편은 사업에 실패하여 많은 부채만을 안게 되었고, 첫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본인은 결국 친정으로 들어가 어머니가 하시던 가게 일을 도우며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시어른을 모시고 있던 형님이 생각지도 못했던 불의의 사고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주버님마저 세상을 뒤따라 등져버리자, 어린 조카들은 부모 없는 고아가 되었고, 이에 시부는 충격을 받아 중풍으로 몸져눕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사업상 지방 여기저기를 다녀야 하였기에 홀로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시가로 들어가 살면서 시모와 함께 시부를 밤낮으로 간호하며 지내던 중, 시모마저 중풍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혼자서 병원과 집을 오가며 시부모 병수발에 어린 아이들과 부모 없는 조카들까지 돌보며 부모 봉양과 가사 일을 도맡아야만 했습니다.

이 때 본인의 몸은 임신 9개월로, 만삭의 몸이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부모의 식사 시중을 들고 손수 목욕까지 시키는 등, 본인의 몸만으로도 힘겨웠을 당시, 친정아버지를 일찍 여의어 부정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던 안타까운 마음에 자신의 몸이 힘든 것을 잊은 채 더욱더 극진히 시부모를 봉양하였습니다.

시부가 살아 있는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같이 경로당에 모셔다드리며 자신의 부모뿐만 아니라 마을 어른들도 공경할 줄 아는 곱고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효행이 널리 이웃에 알려지면서, 요즘 젊은이들에게 점점 옅어져가고 있는 효에 대한 정신을 일깨우는 귀감이 되어 고령군수로부터 효행자로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지극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부는 병색이 짙어 결국 2006년 11월, 7년간의 투병 끝에 돌아가시자 이희정(李嬉貞) 씨는 오히려 더 잘 모시지 못한 자신의 탓으로 여기어 49제를 지내는 동안 손과 무릎이 닳도록 매일 108배를 드리며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극진한 효행을 다하였습니다.

거듭되는 집안의 우환으로 심신이 많이 힘들었음에도, 중풍으로 계속 투병 중인 시모의 원거리 통원 치료를 도맡아 하며 힘든 기색 하나 없이 항상 웃는 얼굴로, 진심으로 어른을 대하며, 자신의 가정을 돌보기만도 힘겨운 상황이지만, 마을의 대소사에도 빠지지 않고 앞장서며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나보다 더 힘든 이웃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자로 이웃사랑 정신도 몸소 실천학 있음에 주위의 칭찬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위와 같이 이희정(李嬉貞) 씨는 24세의 나이에 김해 허씨 집안의 막내아들에게 시집와, 어린 아이들을 남겨두고 일찍 세상을 떠난 형님 내외를 대신하여 맏며느리 역할을 하며 중풍으로 몸져누운 시부모를 내 몸보다 더 소중히 여기며 극진히 보살피어 부모에게는 효를 다하였고, 자녀들과 조카들에게는 없어져 가는 대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효를 실천하는 좋은 본보기로 산교육의 장을 열어주었으니 나아가 이웃과 국민들에게는 핵가족화에 따라 퇴색되어 가는 효의 정신을 되새기게 하는 타의 귀감이 됨에 손색이 없기에 이를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