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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자 씨는 1959년 4월 충청남도 천안시 성환읍에서 9남매 중 6번째로 태어났으며, 어려운 가정 환경으로 인해 중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과 구미에서 직장 생활을 하였고 직장 생활 중 친구 소개로 지금의 남편 김종한을 만나 28년 동안 살고 있습니다.
결혼 후 시댁에는 시부모님과 대학 4학년, 대학 2학년, 고등학교 3학년, 초등학교 6학년의 시동생 4명, 시이모님을 포함하여 9식구가 한 집에서 생활을 하였으며 남편은 시모와 함께 행상 일을 하다 보니 며칠 동안 집에 못 들어오는 일이 잦아 실질적인 집안일 및 시부, 시이모님, 시동생 뒷바라지는 본인의 몫이었고 시부는 양조장에서 일을 하여 모든 집안의 대소사는 정영자 씨가 도맡아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과 어르신을 공경하는 마음이 없었더라면 아홉 식구의 살림을 맡아 하는 일이 불가능했으리라고 상기인은 회고합니다. 힘든 가정 환경에서도 열심히 생활을 해서 지금은 시동생과 시누들을 다 혼인시켰고 가족 우애도 주위에서 부러움을 받을 정도로 소문이 자자합니다.
결혼 5년 후에 시이모님이 중풍으로 쓰러져서 1년 가까이 병수발을 하던 중에는, 4살, 1살 자녀 양육으로 고생하는 처조카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구미에 사는 외삼촌 댁에서 모시게 되었고, 그 후 시이모님을 3년 동안 수시로 찾아뵙고 간병하고 위로드렸습니다.
얼마 후에는 시어머님이 중풍으로 쓰러져 현재까지 집에서 대·소변을 받아내는 병수발을 하고 있습니다. 시어머니는 행상을 하던 중 넘어져 거동 불능이 된 지가 17년이나 되었으며, 고생과 헌신을 많이 하신 어머니가 며느리 고생한다고 양로원에 가겠다고 해도 본인이 만류하고 거절해서 모실 수 있는 여력이 될 동안은 수발하겠다고 설득한 게 벌써 16년이나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작년 봄에는 시부의 몸 상태가 점점 안 좋아 대구가톨릭병원에서 담도암으로 판정을 받아 수술을 하였으며, 복부 팽창 및 소화불량으로 정상적인 식사가 어려워 소화와 흡수가 잘되는 식단을 마련하여 하루 여섯 끼니를 수발하였으며, 이런 와중에 2개월 전에는 병중의 시모께서 허리를 크게 다쳐 왜관병원에 입원하여 치료 중인데 본인이 매일 병원을 오가며 간병을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동네 부녀회 총무로 10여 년간 봉사하여 이웃사랑을 몸소 실천을 하고 특히 어르신들 관련 행사에는 솔선수범해 내 부모에게만 효도하는 것이 아니라 어르신들 공경을 집안 밖에서 행동으로 실천하고 사회 환경이 나날이 인정이 메마르고 예절과 질서가 흐트러지고 부모님과 웃어른 공경하는 효심이 엷어지는 것이 제일 마음이 아프다고 하며, 힘들고 어려운 일도 앞장서서 하는 모습에 주위 이웃들의 칭찬이 자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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