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박운자(朴夽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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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회(2011년 4월 20일)
보화상(補化賞) 본상(本賞)
경상북도 구미시 형곡동
효부(孝婦) 박운자(朴夽子) 32세

박은자 씨는 본관이 밀양(密陽)으로 안동대학교 사범대학 전자공업과를 졸업하고 현재 구미 금오공고 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평소 효심이 지극하고 이웃어른을 내 부모처럼 공경하는 삶을 살고 있는데 특히 간암으로 투병중인 시부(媤父)에게 자신의 간을 이식해 드리고 시아버지께서 건강을 회복 하실 때까지 극진히 보살펴 온 하늘이 내린 효부입니다. 

이는 날로 퇴색해 가고 있는 우리의 미풍양속인 효행사상을 몸소 실천하여 지역주민과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물론 모든 사회인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시아버지의 간경화가 발병된 시기는 박은자 씨가 시집오기 1년 전인 2004년경으로 추정되며, 2005년 6월경 시아버님의 체중이 점차 크게 감소되어 이상하다 싶어 병원에 가셔서 건강검진을 받은 결과 생각지도 못했던 간암 3기로 판명을 받았습니다.

검진 이후 2년여 동안 대구 영남대병원에서 색전술 및 항생제투여로 최선을 다하여 치료하던 중, 2006년 6월에는 병세가 더욱 악화되고 주변에서 아무래도 서울이 의료기술이 앞선다고 하여 급기야 서울아산병원으로 이전하여 치료를 계속하였지만, 병세가 호전되지 않았고, 2007년 3월경에는 병원으로부터 간이식 외에는 치료방법이 없다는 최후통보를 받았습니다. 온 가족의 걱정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별수가 없었습니다.

가족들이 힘을 합쳐 최후수단이라는 간이식을 준비하는 가운데 환자(시아버지 박영환)의 자녀 4명 모두가 기증자로 자원했지만 아무도 혈액형이 맞는 사람이 없었고 삼촌 한 분이 가능성 있어 정밀검사를 하였으나 역시 간이식 불가판정을 받아 가족 가운데 기증대상자를 찾을 수가 없어 모두가 애를 태우던 중 며느리인 박은자 씨가 기증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혈육관계도 아닌 시아버지에게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자신의 위험을 무릎 서고 간 기증을 결정하면서 시아버지를 살려야겠다는 일념에 자신도 많이 울었습니다.

이제 겨우 28살, 갓 시집 온 젊은 새댁의 용기 있는 효심에 가족들이 감동했지만 장래를 걱정하여 그 후 수 차례 가족들이 생체 기증의 만류를 거듭하였으나 기증자의 의지를 꺾지 못하였으며, 환자(시아버지 박영환)가 혹시 기증자를 알 경우 간이식을 거부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에 이를 우려하여 자신이 기증자임을 밝히지 않고 2007년 8월 10일 성공리에 간이식 수술을 하였습니다.

환자(시아버지 박영환)는 간이식 수술 성공 후 2007년 9월 21일 퇴원하여 2주에 1번씩 통원치료 받았고 시아버지가 간 기증자가 며느리임을 알고 난 뒤 어쩔 줄을 몰라했지만 박은자 씨는 시어른을 대함에 있어 행여 심적으로 부담감을 갖지 않으시도록 딸처럼 말동무가 되어드리고 항상 정성과 효성으로 시아버지의 병수발에 지극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박은자 씨는 “며느리, 아내, 어머니”의 역할과 함께 힘든 직장에 근무하면서도 주 1-2회 꼭 시어른을 찾아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등, 핵가족화 시대에 참으로 보기 드문 효행의 본보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박은자 씨의 효행으로 집안에서도 형제자매간에 더욱 끈끈한 우애가 생겨났으며 부모님을 늘 먼저 배려하는 따스한 마음이 주위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있으며 또한 형제들 간의 남다른 깊은 우애도 주위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박은자 씨의 실천하는 효행과 화목한 가정생활은 효친사상이 허물어져 가는 오늘날의 청소년들과 이기주의의 병폐에 신음하는 우리사회에 큰 감동을 주어 2007년 “자랑스런 구미사람” (시장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