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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1월, 남편 주대중 씨와 고향인 울진군 산포리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한 이해순 씨.
결혼 초에는 시어머니와 함께 생활했지만 얼마 후 남편의 직장을 따라 구미로 옮겨 생활하게 되었다. 그런데 부부의 분가 후 고향에 홀로 남아 농사를 지으시던 시어머니가 2007년 여름, 들에서 농사일 도중 쓰러졌다. 급히 대구 소재 큰 병원에 입원해 진단한 결과 시어머니는 간경화라는 진단을 받았다. 돌봐주는 이 없이 생활하다 보니 몸이 점점 쇠약해진 것이었다.
이때부터 이해순 씨의 간병이 시작되었다. 남편과 자녀를 구미에 두고 홀로 산포리 소재 부모님 집에서 시어머니의 간병을 도맡은 것이다. 하지만 며느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의 병은 차도가 없었다. 몸은 점점 쇠약해지고 심지어 거동조차 못 할 정도로 병세는 악화되어 갔다. 결국 대구 소재 영남대 병원에 입원하여 재검사를 한 결과, 시어머니는 간암 판정을 받았다.
가족들은 시어머니의 간암 수술을 위해 간 기증자를 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 형편이 어려운 탓에 타인으로부터 간을 기증받아 수술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남은 방법은 가족 중에서 기증자를 찾는 것뿐이었다. 가족회의를 통해 2남 2녀의 자녀 가운데 간 이식이 가능한 사람을 찾아 어머님 병환을 치료하고자 했지만, 검사 결과 두 아들은 어머니와 혈액형이 맞지 않았다. 그리고 큰딸은 갑상선 질환, 막내딸 또한 간질환이 있어서 4명의 자녀 모두 어머니에게 간이식을 하기 어렵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던 어머니 역시 마음이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자식들에게 걱정과 폐를 더 이상 주고 싶지 않다며 수술을 거부했다. 어머니의 치료에 해결책이 없어 가족들 모두 고민과 슬픔에 잠겨 있는 모습을 이해순 씨는 그냥 바라볼 수 없었다. 집안의 큰며느리로서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을 친자식처럼 아껴주고 보살펴주신 시어머니를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본인의 간이식이 가능한지 대구 영대병원에 검사신청을 했다. 그리고 하느님도 이해순 씨의 지극정성과 효성에 감동했는지 간이식 수술 적합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시어머니는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자식들한테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우냐’며 극구 수술을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순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며느리의 진심 어린 끈질긴 설득 끝에 시어머니도 결국 수술을 허락했다.
얼마 후 이해순 씨는 서울 아산병원에서 최종 간이식 가능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복부비만 때문에 수술이 힘들다는 판정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해순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고생한 과정을 의사 선생님께 설명하며 꼭 수술해야 한다고 호소했는데 결국 의사 선생님께서도 그녀의 효성에 감동했다며 어머니 수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2012년 7월 22일. 시어머니의 간암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시어머니는 건강한 모습으로 지내고 있다. 이해순 씨 역시 시어머니를 곁에서 돌보며 화목한 가정을 꾸려 나가고 있다.
위험이 따르는 수술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시어머니를 위해 노력과 정성을 다한 이해순 씨. 이러한 이해순 씨의 부모 섬김 마음은 어른 공경과 효 사상 고취에 큰 경종을 울렸음은 물론, 보는 이들 모두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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