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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군에서 유복한 가정의 막내로 태어난 권진숙 씨는 1988년 24세의 나이로 이동수 씨와 결혼했다.
남편은 7남매 중 다섯째지만 권진숙 씨는 여건이 좋지 않은 형제들 대신 자신이 부모님을 모시고 싶다는 남편의 뜻을 따라 지금까지 시부모를 모시고 있다.
시댁인 안동시 도산면은 유교적인 전통 사상이 뿌리 깊은 곳으로 오랫동안 도시의 유복한 가정에서 생활했던 권진숙 씨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지만 시부모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며 시부모를 내 부모처럼 잘 봉양했다. 특히 “시집가면 저녁식사 후 바로 방으로 가서 부부끼리만 있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는 친정부모의 당부에 따라 매일 저녁 식사 후 시부모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말동무를 해드리고 놀이를 같이 해드렸다. 또한 넉넉지 못한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남편을 도와 성실하게 농사일을 하였고, 부부가 열심히 일한 덕분에 집안 살림은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막내 시동생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권진숙 씨는 막내 시동생의 결혼 준비까지 도맡아 치르기도 했다. 그런 며느리의 모습을 보고 시부모님은 고마움에 눈물까지 보였다고 전해진다. 이 역시 친정 부모님의 말씀을 믿고 실천한 결과로써 권진숙 씨는 누구보다 시부모님의 사랑과 정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사람의 삶이란 언제나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기 마련. 2001년 어느 날, 20년간 모시던 시아버지께서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는 일이 생겼다. 가족 모두가 힘들었지만, 특히 서로 의지하며 지냈던 시어머니는 별안간 남편을 잃은 슬픔으로 식사도 못하시고 바깥출입도 하지 않으셔서 건강이 크게 나빠지게 되었다. 그런 시어머니의 모습에 권진숙 씨는 자식과 같은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직접 식사도 떠 먹여 드리고, 목욕도 시켜드리고, 함께 외출도 하여 시어머니의 건강 회복은 물론 마음의 안정도 찾게 해 드렸다. 지금도 시어머니께서는 그 당시 며느리가 딸 같이 든든하고 정말 고마웠다고 말씀하시며 다정히 며느리의 등을 토닥여 주시곤 하신다.
권진숙 씨는 지금도 늘 지척에 시어머니를 모시고자 하는 마음으로 최근 새로 지은 집에서도 본인의 바로 옆방으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늘 아침저녁으로 마치 그림자처럼 옆에서 챙겨오고 있다. 시어머니께서 혹시 적적하실까 동네 경로당에도 매일 모셔다 드리며 극진하게 모시고 있는데, 이를 본 사람들의 입에 칭찬이 마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권진숙 씨는 2007년부터 토계리 새마을 부녀회장직을 맡아 마을 어르신들의 안부와 식사를 챙겨 드리는 것은 물론 놀이 상대도 해드리고 있다. 이런 진숙 씨의 모습에 2013년부터는 주변의 추천으로 도산면 새마을 부녀회 총무로도 선출되어 여러 가지 일을 더 맡기게 되었는데, 권진숙 씨는 싫은 내색 하나 없이 각종 봉사를 해오고 있다.
퇴계 이황 선생의 종택에 인접해 약 20호가 모여 사는 마을 주민 모두는 늘 솔선수범하여 봉사활동에 앞장서 동네의 궂은일도 마다 않는 권진숙 씨를 안동의 효부라 여기며 큰 자랑거리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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