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서경예(徐敬禮)

페이지 정보

본문

제28회(경북 봉화군 춘양면)
독행상(篤行賞)
경북 봉화군 춘양면
효부(孝婦) 서경예(徐敬禮) 34세

부모(父母)를 공경(恭敬)하고 사랑하는 자녀(子女)는 당연(當然)히 부모(父母)의 건강(健康)을 염려(念慮)하며, 특히 의식주(衣食住)에 있어 가능(可能)한 한(限) 평안(平安)히 모시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그만으로 우리는 효(孝)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重要)한 것, 그것은 곧 부모(父母)의 마음을 항상 평안(平安)하게 해 드리고자 노력(努力)하는 마음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참다운 효(孝)'란 인간(人間)이 인간(人間)답게 살아가고자 할 때 가장 먼저 실천(實踐)해야 하는 도리(道理)인 것이다. 바로 그 효(孝)를 실천(實踐)을 통해 보여 준 효부(孝婦)가 있으니, 그가 바로 당년(當年) 34세(歲)의 서경예(徐敬禮) 여사(女史)이다. 

2남(男) 1녀(女)의 어머니이기도 한 서여사(徐女史)는, 시부모(媤父母)님과 남편(男便)을 극진히 공경(恭敬)하면서 살아온 모범주부(模範主婦)로서, 노환(老患)으로 고생(苦生)하고 있는 시부모(媤父母)님의 대소변(大小便) 받아내기를 1년(年)을 하루같이 되풀이하면서도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극진히 봉양(奉養)해 왔다. 

뿐만 아니라 세수(洗手)에서부터 손톱, 발톱 깎는 일에 이르기까지 그의 따뜻한 손길은 끝이 없는데, 특(特)히 고기가 먹고 싶다고 말하면 아무리 추운 날씨라도 냇가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다가 시부모(媤父母)님께 드리는 정성(精誠)을 다했다. 어느 날 하루는 물고기를 잡다가 깊은 물에 빠져서 하마터면 죽을 뻔한 일도 있었을 만큼 시부모(媤父母)님을 위하는 그의 효심(孝心)은 끈덕질 정도였다. 

"남자(男子)도 아닌 여자(女子)의 몸으로 냇물에 뛰어들어가 고기를 잡고 있는 서여사(徐女史)의 놀라운 정성(精誠)을 볼 때마다 부끄러움이 앞섰다. 여자(女子)도 아닌 남자(男子)인 내가 부모(父母)님을 위해서 그만한 효성(孝誠)을 바친 적이 있었던가?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心情)이었다."라는 어느 인근주민(隣近住民)이 말한 그대로, 서여사(徐女史)의 효행(孝行)은 누가 보아도 탄복(歎服)할 정도였다. 

해마다 어버이날을 맞이 할 때마다 손수 정성(精誠)껏 음식(飮食)을 마련해서 이웃 노인(老人)들을 초대(招待)하기도 하는 그는, 남달리 예의범절(禮儀凡節)도 바르기만 하여, 언제나 동민(洞民)들의 칭송(稱頌)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시부모(媤父母)님께 드리기 위해 깊은 산중(山中)을 헤매면서 약초(藥草)를 캐다가 바위에서 뒹군 일도 한 두 번이 아니었으며, 또 어떤 날은 산(山)에서 길을 잃고 밤새 산(山)속을 헤매다가 다음 날 새벽에야 귀가(歸家)한 후(後) 그 자리서 졸도(卒倒)한 일도 있을 만큼 그의 효심(孝心)은 지극(至極)하였다. 

천성적(天性的)으로 온화(溫和)한 성격(性格)을 지니고 성장(成長)한 서여사(徐女史)는, 그에게 효부(孝婦)라는 칭찬(稱讚)이 들려올 때마다 괴로움에 못 이겨 이렇게 말했다. 

"부모(父母)님의 은혜(恩惠)에 천만분(千萬分)의 일(一)도 보답(報答)하지 못한 주제에, 당(當)치도 않은 과찬(過讚)이다. 제발 날더러 효부(孝婦)란 말을 하지 말아 달라."  

이같이 겸손(謙遜)의 미덕(美德) 겸비(兼備)한 서여사(徐女史)야 말로 숨은 효부(孝婦)였고, 자랑스러운 한국(韓國)의 여인상(女人像)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