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박윤선(朴閏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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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1985년 4월 17일)
독행상(篤行賞)
경북 포항시 덕수동
효부(孝婦) 박윤선(朴閏仙) 36세

국민학교(國民學校) 교사(敎師)의 아내인 박윤선(朴閏仙) 여사(女史)는 남편(男便)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또 3남매(男妹)의 어머니 구실을 하면서도, 78세(歲)의 시모(媤母)님과 92세(歲)의 시조모(媤祖母)님을 극진히 봉양(奉養)해 온 효부중(孝婦中) 효부(孝婦)이다. 

1년전(年前)부터 시조모(媤祖母)님이 노환(老患)으로 자리에 눕게 되자, 남편(男便)의 봉급(俸給)으로는 생계(生計)가 어려워 약(藥)값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행상(行商)길에 나섰다. 

생선(生鮮)과 야채(藥菜)장수를 하면서 시조모(媤祖母)님의 약(藥)을 마련하기도 한 박여사(朴女史)는, 집에 돌아오는 즉시(卽時) 환자(患者)곁에 꼬박 지켜 앉아서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면서 극진히 간호(看護)하는 한편, 시조모(媤祖母)님뿐만 아니라 78세(歲)에 달(達)하는 시모(媤母)님도 노환(老患)으로 시조모(媤祖母)님과 함께 자리에 눕는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했는데, 그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박여사(朴女史)는 이성(理性)을 잃지 않고 노인(老人)들의 건강(健康)을 차분하게 보살피면서 극진히 간병(看病)하였다. 

특히 그는 교직자(敎職者)의 아내답게 인륜도덕(人倫道德)과 도의(道義)가 쇠퇴(衰退)하는데 대해서 입버릇처럼 "자식(子息)이 부모(父母)에게 불효(不孝)하고 패륜(悖倫))하는 일, 부모(父母)가 자식(子息)을 박대(薄待)하여 파륜(破倫)하는 일, 사제지간(師弟之間)에 있어야 할 경로사상(敬老思想)의 결지(缺知), 형제지간(兄弟之間)에 줄어져 가는 우애(友愛), 연장자(年長者)와 연하자(年下者) 또는 상하간(上下間)에 존경(尊敬)과 사랑의 미풍(美風)이 없어지는 일들은, 우리의 전통적(傳統的)인 도덕관(道德觀)에 크게 어긋나는 것은 물론, 인간적(人間的) 견지(見地)에서도 용서(容恕)될 수 없는 일인데, 이런 사례(事例)가 많음을 실(實)로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박여사(朴女史)는 이와 같이 개탄(慨嘆)하면서 어버이 살아계실 때 효성(孝誠)을 다해야 한다는 충고(忠告)도 잊지 않는다. 

박여사(朴女史)는 비단 가정(家庭)에서뿐만 아니라 이웃과 지역사회(地域社會)를 위해서도 헌신적(獻身的)으로 봉사(奉仕)하고 있는데, 그 좋은 예(例)로 1985년(年) 1월(月) 정기반상회(定期班常會)를 자기(自己) 집에서 개최(開催)한 일이었다. 반원(班員) 21세대(世帶)를 모두 초청(招請)한 박여사(朴女史)는 그 날 반상회(班常會) 석상(席上)에서 "포항(浦項)에서 으뜸가는 반상회(班常會)를 만들어 보자."고 역설(力說)하기도 했는데 이를 계기(契機)로 반원(班員) 모두가 협동단결(協同團結)에 힘써 지금에 와서는 모범반(模範班)으로 손꼽힐 만큼 반원(班員)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반(班)의 살림을 알뜰히 꾸려가고 있다고 한다. 

오늘도 시조모(媤祖母)님의 약(藥)값과 생계(生計)를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 박여사(朴女史)는 급히 행상(行商)바구니를 옆에 끼고 시장(市場)으로 달려나갔다. 

"저 아주머니가 국민학교(國民學校) 교사(敎師)의 사모(師母)님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글쎄 어딘가 모르게 사람이 좀 다르다고 생각했죠. 왜냐하면 노인(老人)들을 대하는 태도(態度)가 그렇게 겸손(謙遜)할 수가 없었고, 예의범절(禮儀凡節)이 그렇게 바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를 매일(每日)같이 지켜보았던 어는 상인(商人)의 솔직(率直)한 고백(告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