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본문
핵가족화(核家族化)와 물질문명(物質文明)으로 인(因)하여 청소년문제(靑少年問題)가 날로 심각(深刻)해져 가고 있는 오늘날, 극도(極度)의 가난도 참고 이겨가면서 헌신적(獻身的)으로 가사(家事)를 돕고 있는 갸륵한 여학생(女學生)이 있는데, 그가 바로 남진영양(南眞英孃)이다.
남양(南孃)의 가정(家庭)은 홀어머니가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꾸려가면서 겨우 생계(生計)를 이어온 가난한 집안이었는데 어느 날 불행(不幸)하게도 화재(火災)로 가게가 타 버리게 됨으로써 가난의 꼬리는 더욱 길어졌고, 따라서 빚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는 등 그야말로 불운(不運)의 악순환(惡循環)이었다.
거기에다 또 그의 어머니마저 득병(得病)으로 병상(病床)에 눕게 됨에 따라 남양(南孃)이 가장(家長) 노릇을 해야만 했다.
고등학교(高等學校)에 다니는 남양(南孃)은 매일(每日)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짓고 중학생(中學生)인 남(男)동생의 뒷바라지를 끝낸 다음 등교(登校)했으며, 학교(學校)에서 귀가(歸家)하기가 바쁘게 어머니를 대신(代身)해서 가사(家事)를 돌보았다.
남달리 효심(孝心)이 깊은 남양(南孃)은, 어제도 오늘도 행상(行商)길에 나서지 못하고 방(房)안에 누워 있는 어머니를 위해, 죽을 쑤어 드리는 등 지극(至極)한 효성(孝誠)으로 보살펴 드리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조금만 건강(健康)이 회복(回復)되어도 행상(行商)길에 나서는 억척스러운 여성(女性)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남양(南孃)은 밤늦게 돌아오는 어머니의 건강(健康)이 걱정스러워 멀리 찻길까지 마중 나가곤 하였다. 그의 어머니가 피로(疲勞)에 지쳐 자리에 눕게 되면, 깊이 잠이 들 때까지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학교(學校)에서 즐겁게 보냈던 이런저런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우는 등 어머니를 위하는 그의 마음은 한(限)이 없었다.
"여고생(女高生)이라면 한창 꿈 많은 낭만(浪漫)의 시절(時節)이라고 볼 수 있는데도 불구(不拘)하고 어머니 곁에 꼭 지켜 앉아서 간호(看護)하는 일에서부터 모든 가사(家事)를 꾸려가는 일에 이르기까지 누가 보나 어른스럽기만한 그의 갸륵한 행실(行實)에 박수(拍手)를 보내지 않는 동민(洞民)이 없다."라고 인근주민(隣近住民)들은 칭찬(稱讚)해 마지 않는다.
남양(南孃)은 비단 가정(家庭)에서뿐만 아니라 학교생활(學校生活)에서도 근면성실(勤勉性實)하다. 그 자신(自身)이 어려운 환경(環境)이라 도시락을 지참(持參)하지 못하는 날이 많지만, 도시락을 지참(持參)한다 해도 자신(自身)보다 더 불우(不遇)해서 도시락을 싸오지 못한 급우(級友)라도 발견(發見)하면, 기어코 같이 나누어 먹는 인정(人情)많은 학생(學生)이었다.
동리(洞里)에서 효녀(孝女)로 불리어지고 있는 남양(男孃)은, 노인(老人)들에 대한 예의범절(禮儀凡節)도 만점(滿點)일 만큼 웃어른에게는 무조건(無條件)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예(禮)의 뜻은 우선 마음 속에 진정(眞情)한 뜻이 있음이 전제(前提)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형식(形式)보다는 성실성(誠實性)이 예(禮)의 근본(根本)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남양(南孃)이야말로 진심(眞心)에서 우러나오는 예(禮)를 갖추어 실천(實踐)하고 있는 산 근본(根本)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이전글제28회 독행상(篤行賞) 이계남(李系男) 25.06.05
- 다음글제28회 독행상(篤行賞) 박윤선(朴閏仙) 25.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