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홍차주(洪且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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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1985년 4월 17일)
독행상(篤行賞)
경북 영주시 인왕동
효녀(孝女) 홍차주(洪且珠) 55세

효(孝)는 한 인간(人間)이 인간(人間)답게 살아가고자 할 때 제일 먼저 실천(實踐)해야 하는 근본(根本)이며, 이 근본(根本)은 우리를 모든 덕(德)에 이르게 하고 있다. 

만일(萬一) 어떤 사람이 자기를 낳고 길러 주신 부모(父母)님도 공경(恭敬)하지 않고 남을 사랑하겠다고 한다면, 그 사랑 또는 그 자선사업(慈善事業)이 아무리 큰 것같이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참사랑이 아니고 자기(自己) 이익(利益)과 명예(名譽)를 얻기 위한 수단(手段)임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을 우리는 위선(僞善)이라고 말하고 있다. 

부모(父母)에게 효도(孝道)하고 형(兄)을 존경(尊敬)할 줄 아는 사람으로서 웃어른께 거스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좀처럼 없다. 

웃어른께 거스르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사회질서(社會秩序)를 어지럽히는 사람은 또한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참사랑으로 남달리 경로효친사상(敬老孝親思想)이 두터운 모범주부(模範主婦)가 있으니, 그 주인공(主人公)이 바로 55세(歲)의 홍차주(洪且珠) 여사(女史)이다. 

6.25 사변(事變)때 돌아가신 친정(親庭)아버지를 대신해 91세(歲)의 친정(親庭)어머니를 지금껏 30여년간(餘年間) 모시고 있는 홍여사(洪女史), 살아있는 현대판(現代版) 심청(沈淸)이라 할 만큼 효성(孝誠)이 지극(至極)하기만 했다. 그의 노모(老母)는, 91세(歲)의 고령(高齡)인 탓으로 때로는 대소변(大小便)도 자력(自力)으로 제대로 못 보시기 때문에 그가 손수 받아냈고, 목욕(沐浴)도 수시(隨時)로 깨끗하게 시켜 드리는 등 그의 자애(慈愛)로운 손길은 언제나 부드럽기만 하였다. 

노환(老患)으로 자리에 누울 때는 동분서주(東奔西走)하면서 약(藥)을 구(求)해 드렸고, 밤을 뜬눈으로 꼬박 새우면서 노환(老患)의 괴로움을 같이 나누는 일도 비일비재(非一非再)하였다. 

그의 남편(男便)은 외항선원(外航船員)인 탓으로 자연 홍여사(洪女史)가 가장(家長) 노릇을 하면서 살아왔는데, 특(特)히 그는 부모(父母)와 사별(死別)한 친정(親庭)조카와 질녀(姪女) 6명(名)을 데리고 함께 동거(同居)하면서, 친자식(親子息) 이상(以上)으로 극진(極盡)한 사랑을 베풀어 주고 있다. 

"친정(親庭)어머니가 91세(歲)의 장수(長壽)를 누리도록 효성(孝誠)을 아낌없이 바치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한두 사람도 아니고 여섯 명(名)의 친정(親庭)조카와 질녀(姪女)들을 키우면서, 자신(自身)이 낳은 친자식(親子息) 이상으로 금(金)이야 옥(玉)이야 할 만큼 사랑을 베풀고 있는데, 세상(世上)에 이렇게 마음씨 착한 여자(女子)가 또 있겠습니까?"라는 인근주민(隣近住民)의 찬사(讚辭) 그대로, 그가 베풀고 있는 사랑은 인간애(人間愛)를 초월(超越)한 참사랑 그것이었다. 

남달리 근검성실(勤儉誠實)한 홍여사(洪女史)는, 폐품(廢品) 및 폐휴지(廢休紙) 등을 수집(蒐集)하여 50만(萬)원짜리 적금통장(積金通帳)을 별도(別途)로 하나 소유(所有)하여 마을사람들로부터 '또순이'라는 별명(別名)을 듣기도 한다. 

마을에서 길흉사(吉凶事)가 있을 때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행사(行事)를 무사(無事)히 마칠 수 있도록 상부상조(相扶相助)의 기풍(氣風)을 조성(造成)하는 등, 그의 놀라운 봉사심(奉仕心)에도 동민들은 박수(拍手)를 아끼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