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윤기수(尹基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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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1985년 4월 17일)
독행상(篤行賞)
경북 예천군 보문면
효자(孝子) 윤기수(尹基洙) 30세

윤기주씨(尹基洙氏)는 그의 나이 15세(歲)에서부터 30세(歲)에 이르기까지 15년간(年間)을, 모친(母親)의 병(病)구완과 부친(父親)의 방탕(放蕩)한 생활(生活)을 바로잡는 데에 모든 열정(熱情)을 다 바쳐온 자랑스러운 청년(靑年)이다. 

그가 열 다섯 살 때 모친(母親)이 갑자기 정신질환(精神疾患)을 일으켜 헛소리를 하면서 가출(家出)하는가 하면 동리(洞里)를 방황(彷徨)하게 되었다. 

결국(結局)은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출가(出家)하여 행방불명(行方不明)이 된 비극적(悲劇的)인 사건(事件)이 발생(發生)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흘러도 그의 모친(母親)은 돌아오지 않았고, 실의(失意)에 찬 부친(父親)의 술타령만 더해 갔다. 

그 때부터 그는 어린 소년(少年)의 몸으로 가장(家長)아닌 가장(家長) 노릇을 하면서 집안 살림을 꾸려갔다. 

"아버지, 건강(健康)을 생각해서라도 술은 그만 삼가도록 하세요. 그 대신(代身) 제가 맛있는 간식(間食)을 마련해 드릴게요. 그리고 어머니도 제 힘껏 찾아서 모시고 오겠읍니다." 

어린 자식(子息)의 간곡(懇曲)한 호소(呼訴)에 그의 부친(父親)도 감동(感動)한 나머지 술을 끊었지만, 가출(家出)한 어머니의 소식(消息)은 바람결에도 들려오지 않았다. 

다니던 중학교(中學校)도 중퇴(中退)하고 어머니 찾기에 나섰던 어느날, 이웃 마을에 옷을 벗고 헛소리를 하면서 다니는 여자(女子) 정신병자(精神病者)가 있다는 말에, 황급히 현장(現場)에 달려가 보니 어머니가 틀림없긴 했지만 그는 울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衝擊)을 안고 집으로 모시고 왔지만, 어머니가 가족(家族)에게 안겨 준 것을 실망(失望)뿐이었다. 

그 후(後) 그는 생각 끝에 보문사(普門寺) 주지(住持)에게 간청하여 정신안정(精神安定)을 시키는 한편, 약(藥)을 달여 드리면서 조석(朝夕)으로 완쾌(完快)하기를 부처님께 간곡(懇曲)하게 기도(祈禱)를 했다. 

부처님의 가호덕(加護德)일까. 마침내 발병(發病) 5년(年)만인 1975년(年)에 악몽(惡夢)같기만 했던 어머니의 광기(狂氣)가 안개처럼 사라지고 정상인(正常人)의 자세(姿勢)로 되돌아왔다. 

그 때 그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어머니를 등에 업고 춤을 둥실둥실 추기도 했다 한다. 

그 후(後) 양가(良家)의 규수(閨秀)를 맞아 결혼(結婚)하였는데, 부창부수(夫唱婦隨)라는 말 그대로 남편(男便)의 효성(孝誠)에 뒤질세라 그의 아내도 시부모(媤父母)님께 효성(孝誠)을 다 바치면서 알뜰히 봉양(奉養)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즉 1983년(年) 12월(月) 세찬 겨울바람이 몰아치던 날이었다. 지금껏 10여년(餘年) 동안 건강(健康)을 유지(維持)하면서 살아오던 모친(母親)이 예전처럼 다시 병(病)이 발작(發作)하는 바람에, 고요하기만 했던 가정(家庭)에 또 한 차례 불운(不運)이 감돌기 시작했다. 윤씨(尹氏)는 자식(子息)으로서의 죄(罪)를 하늘에 빌면서, 모친(母親)을 모시고 유명(有名)하다는 정신병원(精神病院)을 두루 뒤져 보았지만 병세(病勢)를 진정(鎭靜)시킬 수는 없었다. 

지금은 집에서 요양(療養)을 하는 딱한 처지(處地)에 놓여있지만, 윤씨(尹氏)는 포기하지 않고 오늘도 약초(藥草)를 캐기 위해 급(急)히 산(山)을 향(向)해 뛰어가고 있었다.